“미국에서 거물급 한인 정치인의 탄생도 시간 문제입니다. 다만, 그들이 한인의 정체성을 계속 가질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미국 뉴욕 퀸즈칼리지 민병갑(74ㆍ사진) 석좌교수는 미주한인사회 및 이민사 연구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재미 원로 사회학자다. 최근 학술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그는 미국 사회 내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낙관하면서도 한인 공동체의 정체성이 일본처럼 급격히 소멸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계했다.
민 교수가 운영하는 재외한인사회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미국에서 시의원 이상의 선거직에 당선돼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한인은 모두 46명으로 주의원은 14명, 시장 2명, 시의원 5명, 카운티의원 25명이다. 연방의원은 1990년대 하원 3선 의원을 한 ‘한인 1세대’ 김창준씨 외에 아직 없긴 하지만, 민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대가 빠르게 주류 사회에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한인 연방의원이나 주지사를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당장 미 정부 고위직(국장급 이상)에 54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중 백악관에 7명, 연방정부에 17명이나 진출해 있다는 것이다. 판사로 근무하는 한인도 35명이다. 1970, 80년대 미국으로 이민간 한인 1세대들이 언어 문제 등으로 주로 자영업에 종사하면서 미국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됐고, 흑인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1990년대부터 고학력 직업 이민자가 늘고 언어적 장벽이 없는 한인 2세대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 참여하면서 한인의 정치력이 크게 신장됐다는 설명이다. 1992년 LA폭동을 계기로 결성된 한인유권자센터 등 풀뿌리 단체들의 정치 참여 노력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대 절반 이상이 백인 등 다른 민족과 결혼하는 추세여서 한인의 정체성 유지가 향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민 교수의 지적이다. “미국 이민 역사가 긴 일본의 경우 2ㆍ3세대들이 현지인들과 결혼해 혼혈화하면서 일본인 공동체의 정체성 자체가 없어지다시피 했어요. 지금은 한인 커뮤니티 활동이 왕성하지만, 우리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어 우리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서울대 사학과를 나온 뒤 1972년 미국 유학을 떠난 민 교수는 1987년 뉴욕 퀸즈칼리지 교수에 부임한 후 30년 가까이 한인이민사회를 연구해왔고, 2010년에는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재미한인사회연구소(www.koreaAmericanDataBank.org)를 출범시켜 한인 관련 각종 통계 분석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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