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도쿄 모두 카오스적 도시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도쿄는 중심에 천황이 사는 황거(皇居)가 있어 일반인의 방문이 제한돼 일종의 도넛 형태를 띤다면, 서울은 경복궁에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어 중심부가 단단한 곳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고시마 유스케)
한국과 일본의 젊은 건축가가 만나 양국의 건축과 도시에 관한 생각을 나눴다. 28일 한양대 제2공학관에서 열린 한일 차세대문화인대담에 참석한 건축가 안기현(한양대 교수ㆍANL스튜디오)과 고시마 유스케다. 안 소장은 한국인 최초로 독일 레드닷어워드 건축ㆍ인테리어 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미국 출생의 고시마 유스케는 일본에서 건축가이자 화가,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청춘, 유럽건축에 도전하다’(효형출판) 등의 책을 내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10월 도쿄 건축대담에서 만났던 두 사람은 이날 대담에 앞서 경북에 있는 병산서원(안동) 소수서원(영주) 도산서원(안동)을 함께 돌아봤다. 대담에서는 도시 건축의 현재와 재난에 대비하는 건축의 방식, 건축가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서울과 비교했을 때 도쿄의 도시 풍경이 좀더 정비된 것처럼 보인다는 안 소장의 말에 고시마는 “인간미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도쿄는 건축기술이 특화돼 세련되고 말끔한 인상을 주지만 그 이상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을 더 풍요롭게 하는 건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 인간미, 뒷골목 같은 것들입니다. 물론 도시의 어두운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걸 깨끗하게 정비해버리는 걸 보면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최근 구마모토현에서 일어난 지진도 언급됐다. 안 소장은 “재난에 대해 일본의 건축가들만큼 꼼꼼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일본 건축계가 재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었다. 이에 고시마는 “건축이 재난에 완벽한 해답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건축이 기술적으로 튼튼하게 발전한다고 해도 동일본대지진과 구마모토 지진이 증명하듯 완벽한 건축은 없다. 두꺼운 콘크리트와 높은 창문을 사용하는 게 해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안의 사람이 정말로 안전하려면 피난을 가는 게 맞다. 결국 안전의 정답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두 사람은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안 소장이 “한국과 일본의 서원을 보면 ‘어? 건축가가 없을 때도 이렇게 좋은 건축물이 만들어졌는데 그럼 우리의 역할은 뭔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운을 떼자 고시마는 “의사나 변호사는 불행한 일이 닥쳤을 때 만나지만 건축가는 생애 첫 집을 갖는 행복한 시절에 만나므로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한 시대의 문화를 건축물에 투영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일”이라며 “가슴이 뛰고 생동감 있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대담은 “다음엔 ‘말’이 아닌 ‘건축’으로 공동작업을 하자”는 약속으로 마무리됐다.
한일 차세대 문화인 대담은 일본 국제교류기금이 문화예술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해 이번에 4회를 맞았다. 전체 대담 내용은 내년에 책으로 묶어져 나온다.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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