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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 컸던 아이들과 이젠 친구처럼… 행복한 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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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감 컸던 아이들과 이젠 친구처럼… 행복한 3년이었다”

입력
2016.05.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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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지난 딸이 자신 몰라봐 충격… “가장 중요한 게 가족” 휴직 결심

밥 먹이는 일부터 힘들고, 네 식구 생계 빠듯했지만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들… 두 번이나 휴직 연장 결심

“복귀 반겨준 조직에 감사”

“아빠니까 당연히 우리 애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함께 지내보니 거리감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아이들과 친해지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어요.”

서영학(45) 여성가족부 홍보담당관(과장)은 지난 달 18일 육아휴직에서 복귀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만 해도 ‘희귀한 사람’에 속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3년이다. 원래 여성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은 자녀 1명당 3년, 남성은 1년이었지만 이 법이 남녀 차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지난해 초 남성도 똑같이 3년으로 확대됐다. 서 과장은 그 첫 수혜자다.

그에게는 2013년 4월의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당시 갓 돌을 지난 둘째 딸 윤(4)이가 모처럼 일찍 퇴근한 서 과장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빠빠빠~”를 외치며 아장아장 걸어와 와락 안겨야 할 시기였지만,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아빠를 외면했다. 둘째가 백일이 지났을 때부터 일에만 매달린 탓이었다. 그가 성폭력 피해 담당 과장이던 2012년 경남 통영에서 이웃주민이 초등생을 성추행하려다 살해한 사건, 전남 나주에서 잠 자던 초등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고종석 사건 등 충격적인 사건이 잇따랐다.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에 ‘아동 여성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서 과장은 주말도 밤낮도 없이 일했다. 딸 입장에서는 아빠가 낯선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이가 아빠를 몰라보는 일은 한국 아빠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그가 이 충격을 육아휴직 실행으로 옮긴 건 그 즈음 읽었던 기사 한 줄의 힘도 컸다. ‘1971년생 남성 절반이 94세까지 산다’는 기대수명 연구결과를 보고 71년생인 서 과장은 “긴 인생 동안 가장 중요한 게 가족인데 일만 하며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빠가 이런 결심을 한다고 아이들까지 한 순간에 바뀌는 건 아니다. 2013년 6월, 호기롭게 휴직에 돌입했지만 육아의 기본, 밥 먹이기부터 막혔다. 첫째 아들 희(7)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오랫동안 많은 양의 밥을 먹고, 둘째 딸은 식탁에 잘 앉아있지만 먹는 양은 적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특성을 모른 채 두 아이를 식탁에 앉혀 놓고 많이 먹으라고 재촉했고, 아이도 아빠도 힘들기만 했다. 그 동안 아내(41)가 찍어 보내준 사진으로만 아이들의 모습을 접했던 서 과장에게 식탁과 화장실, 집 밖에서의 아이들은 기대와는 달랐다. 서 과장은 “카메라 렌즈가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아이들을 보고 일상을 공유하고, 이젠 그 순간들이 다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며 “3년 동안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공무원이라지만 장기간 육아휴직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 휴직했을 때는 회사 내의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려 쉬는 거냐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휴직 초기 다른 부처 동료로부터 “암 걸렸다며?”라는 걱정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남성이 육아를 위해 휴직을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너무 낯설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휴직이 길어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었다. 연금 보험료를 제하고 그가 받은 육아휴직급여는 월 52만원 정도. 금속공예 작가인 부인이 작품 등을 판매해 버는 수입이 있었지만 고정적이지 않은데다 네 식구 생계에는 빠듯했다. 결국 보험은 1개만 남겨두고 모두 해약하고, 8년간 가입했던 주택청약저축까지 깨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왜 1년 단위로 신청하는 육아휴직을 두 번이나 연장했을까. 서 과장은 “첫 1년 동안 아이들과 많이 친해졌고, 평생 다시는 아이들과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워 1년 더 연장했다”고 말했다. 휴직 2년이 끝나기 직전인 지난해 초 남성 공무원 육아휴직이 3년으로 늘었다. 하지만 3년이나 휴직을 하면 경력에 타격이 클 것 같아 고민이 깊었다. 이번에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던 아내가 박사과정 한 학기를 앞두고 또 공부를 중단해야 할 상황이어서 1년 연장을 결심했다.

가족 전체가 건강해지는 소중한 3년을 겪은 뒤 직장으로 복귀한 서 과장은 이제 그 효과가 가족에만 머물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서 과장은 “복귀 후 따뜻하게 맞아준 조직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졌고, 자녀를 키우는 동료들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여전히 육아휴직을 하려는 남성에게 “직장생활 끝내고 싶냐”고 묻는 분위기가 일상인 우리 문화에서 그의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될지도 모른다. 여성조차 휴직이 어려운 회사도 많다. 이에 대해 서 과장은 “직원의 휴직이 단기적으로는 회사의 손실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능한 인재가 충성심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회사도 발전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고 말했다.

가정의 달, 5월이 이제 막 시작됐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들을 위한 행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서 과장은 마음의 거리에 대해 고민해보길 권했다. “아빠들이 과연 자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애들이 더 커서 아빠와 대화를 안 하려 하기 전에요.”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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