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산하 위원회 활동 이후
피해자들의 국가 손해배상 대리
“변호사법 위반” 지적에 사임
공무 중 취급한 사건 수임은 불법
“구제 가능한 사실도 모르는 분들
도울 사람 없어 무료 변론” 해명
국무총리 산하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대형로펌 대표변호사가 관련 사건 소송을 수임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 위원을 지낸 변호사들이 관련 사건 변론을 맡았다가 지난 2월 법원에서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유ㆍ무죄 판결을 받은 지 불과 두 달여 만의 일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A 변호사는 한센인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맡아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변론을 하던 중 지난달 27일 사임했다. 상대측 변호사가 법정에서 “A 변호사는 과거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으로 활동한 뒤 이 사건을 대리해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A 변호사는 2009~2013년 구성된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위원회의 제1기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위원회가 꾸려지기 전인 2003년부터 한일 소록도 피해자 공동 변호인단의 단장으로 활동하며 일본 법 개정 활동을 추진해 일제강점기 소록도에 강제로 격리수용된 한센인 피해자들에게 일본 정부로부터 1인당 800만엔(한화 8,523만원)의 피해보상을 받아내기도 했다.
진상규명위원의 관련 사건 수임은 ‘변호사는 공무원·조정위원 또는 중재인으로서 직무상 취급하거나 취급하게 된 사건에 관하여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변호사법(제31조 제1항 3호) 위반 소지가 있다. 진상규명위원은 공무원과 같은 것으로 여겨 위원으로 있을 때 취급한 사건의 수임이 금지된다. 공무상 알게 된 비밀을 개인적 이익을 얻는 데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억울한 사건의 진상 규명에 참여한 변호사들이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대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A 변호사는 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한센인 피해자들은 소송을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분들이어서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은 뒤 한국에서도 배상받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이라며 “우리가 아니면 이 소송을 해 줄 사람이 없어 무료로 맡았고 전국을 다니며 피해사실을 조사했다”고 항변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미나마타병이나 이타이이타이병 진상조사위원들이 피해자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위원으로 활동해도 규제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변호사법 위반으로 본다면 수긍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도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두고 의견이 나뉜다. 공무 관련 사건 수임을 한번 용인하면 이후 불법 수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과, 진상규명위원이야말로 오랫동안 국가와 사회에서 외면당한 1,800여명의 한센인들을 변론할 수 있으니 비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2월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변호사들이 관련 사건을 수임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법원은 2명에게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하고 1명은 무죄 판결했다. 2명은 시효 만료를 이유로 면소판결했다. 법원은 특히 집행유예를 선고한 변호사들에 대해 개인적 이익을 취하지 않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권이 침해된 피해자 가족과 유족을 돕고자 사건을 수임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선임계에 이름만 올리고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거나 수임료를 받지 않은 변호사 2명은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했다.
일제강점기 때 시행된 강제단종·낙태 정책은 잠시 중단됐다가 광복 후 1949년부터 1992년까지 이어졌다. 한국 정부는 2007년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고 현재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과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강제중절수술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4,000만원씩, 정관 절제수술을 받은 피해자들에 3,00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인정했고 현재까지 배상판결을 받은 한센인은 모두 581명이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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