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사육장 만들어 복원 시작
160마리로 증식해 자연에 방사
이달 새끼 2마리 태어날 예정
올해는 황해도ㆍDMZ 방사 추진
“시집간 딸의 첫 출산을 기다리는 엄마의 심정이 이럴까요?”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 박시룡(64)원장은 요즘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자연에 풀어놓은 황새 8마리 가운데 한 쌍이 학수고대하던 짝짓기에 성공, 곧 새끼들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올해 초 부부의 연을 맺은 이 황새 커플은 4월 15일쯤 둥지에 알을 낳고 서로 번갈아 가며 품고 있다. 연구원측이 망원경으로 확인한 알은 2개. 황새 부화 기간이 약 30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달 중순쯤 새끼 2마리가 태어날 것으로 연구원측은 기대하고 있다.
이들 아기 황새가 탄생하면 국내에서 텃새로 살던 황새가 멸종한 이후 최초의 자연번식으로 기록된다. 우리 황새는 1971년 충북 음성에서 마지막 한 쌍 중 수컷이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뒤 자연번식이 사라졌고, 1994년 혼자 남은 암컷마저 숨진 뒤에는 국내에서 완전 멸종됐다.
박 원장은 “이 땅에서 45년 만에 다시 황새의 자연번식이 시작됐다”며 “한반도 황새복원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선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은 국내 유일의 황새복원 연구기관이다. 지난 20년 동안 이 연구원을 세우고 이끌어 온 박 원장은 황새복원 운동의 산파이자 산 증인이다.
그가 황새복원센터(연구원의 전신)를 만든 것은 1996년. “멸종된 황새를 되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교내에 사육장을 만들고 러시아, 독일에서 3마리의 황새 새끼를 들여와 인공부화와 번식을 시도했다. 인공증식으로 개체수를 160마리까지 늘리면서 황새를 자연에 방사할 프로젝트도 함께 추진했다. 적응훈련 등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해 9월 인공번식한 황새 8마리를 충남 예산 황새공원에서 처음으로 야생에 풀어놓았다. 이 가운데 한 쌍이 이번에 자연번식에 성공한 것이다.
황새생태연구원은 올해 초가을께 황새 10여 마리를 추가로 방사, 복원사업에 속도를 붙일 참이다.
연구원은 또한 올해부터 북녘 하늘에 황새를 날게 하는 프로젝트도 본격화하기로 했다. 이는 통일을 대비한 전략이다. 대상지는 북한 황해도와 비무장지대(DMZ)로 삼았다. 황해도와 가장 가까운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황새 야생복귀 시설을 마련한 뒤 황새를 풀어놓는다는 계획이다.
박 원장은 “방사된 황새들이 황해도의 옛 터전인 연백평야와 DMZ내 습지에서 서식처를 찾을 것 같다”고 예측했다.
그는 “연백평야 일대는 지금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저어새가 종종 날아 든다”며 “잘만 관리한다면 국제적인 황새 서식지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계획을 최근 외국 학자들을 통해 북한 조류학계에 전달한 상태다.
황새생태연구원은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남북한 공동으로 황새 평화생태지대를 만들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박원장은 우리보다 10년 먼저 황새 복원사업을 시작한 일본과의 공동연구ㆍ정보 교류에도 적극적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방사한 황새들이 왔다갔다하며 짝짓기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황새복원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한데, 박 원장은 “아직도 멀었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가 아직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황새가 맘놓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서식지 조성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황새 서식지 조성은 황새가 야생으로 귀환하는데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황새는 우리나라 들녘 어디서나 흔히 보던 텃새였지만 농약사용과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여 황새를 다시 보려면 자연생태계가 숨쉬는 서식처를 만들어주는 게 급선무다.
“아무리 많은 황새를 증식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뭐합니까? 그들이 안착할 서식환경을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한반도 황새복귀 프로젝트’는 헛구호에 불과합니다.”
박 원장은 “서식지 조성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황새 서식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평생회원 개념의 황새클럽을 이달 중 출범시킬 생각이다. 회원 1명이 한 달에 1만원의 회비를 황새 마을 조성비용으로 자동이체하는 방식이다. 전국적으로 1만 5,000명의 회원을 모집하는 것이 1차 목표다. 이 기금으로 150ha의 논을 임대해 습지로 만든 뒤 황새 먹이터로 조성한다는 계산이다. 이 정도 크기는 황새생태연구원의 복원 목표인 황새 50쌍이 필요로 하는 습지(1만 5,000ha)의 1%에 불과하다. 그는 “비록 작은 규모지만 황새를 살리는 일에 국민 다수가 공감하고 참여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 원장은 황새클럽에 가입한 회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자신의 황새 그림을 선물할 작정이다. 독일 유학시절부터 화가로도 활동한 그는 황새복원 사업에 뛰어든 뒤로는 오직 황새만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황새의 행동을 크로키나 세밀화로 담아냈고, 수 년 전부터는 황새가 사는 미래의 우리 산하를 상상하며 수채화로 담고 있다.
박 원장은 “황새 복원은 단순히 천연기념물 한 종을 살리는 운동이 아니라 한반도의 건강한 자연생태계를 다시 찾고 건강한 한국인의 정신도 되살리는 범국민적 녹색운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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