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수사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정부 책임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의 책임을 해당 기업들에만 물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독성물질이 호흡기와 관련된 생활용품에 들어갈 때까지 방치했고, 피해자가 속출하는 데도 대처를 소홀히 해 사태를 키운 것은 정부였다. 가습기 살균제 파문은 기업과 정부의 무책임이 겹쳐 발생한 ‘안방의 세월호 사태’나 다름 없다. 검찰 수사와 함께 정부 책임론의 진상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발단부터 전 과정에는 정부의 부실 대응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정부는 1996년 독성물질인 PHMG 성분이 포함된 카펫 항균제 개발 검사에서 흡입독성시험도 거치지 않고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정했다. 5년 뒤 이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 변경될 때도 역시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사람이 직접 흡입하는 일종의 의약품에 유독물질이 포함돼 있는데도 독성검사를 하지 않은 채 판매를 허용한 것이다.
피해자가 속출한 후의 관계당국의 대응도 무책임의 극치다. 2006년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교수 등이 가습기 살균제의 심각성을 알렸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2007년에는 4개 대학병원 의료진이 관심을 촉구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은 아닌 것 같다”며 방관했다. 그러다 2011년에야 역학조사를 벌여 살균제가 폐 질환의 원인임을 확인했다. 정부가 진작에 일선 의사들의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대형 참사로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살균제의 위해성이 인정된 후에도 미온 대처로 일관했다. 환경부는 3차에 걸친 피해 접수를 받으면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피해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나마 지난해 12월에는 접수를 마감해버렸다.
여론이 악화되자 뒷북대응에 나선 정부의 행태는 한심하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박근혜 대통령은 뒤늦게 철저한 조사와 피해자 구제책을 주문했고, 그제야 새누리당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질타에 나섰다. 국회에 야당이 제출한 관련 법안이 3년 넘게 계류 중이지만 거들떠도 보지 않던 상황을 떠올리면 기가 막힌다. 정부가 이제서야 피해 인정 범위를 폐 질환 이외의 질환으로 확대할 방침을 밝힌 것도 병 주고 약주는 격이다. 지난 5년 동안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업체와 정부로부터 외면 받고 처절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정부의 허가ㆍ관리ㆍ감독 과정을 낱낱이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이 세월호와 가습기 사건 같은 대형 참사를 감내해야 하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