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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은행나무 아래서

입력
2016.05.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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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이맘때의 은행나무 빛깔에 홀리다시피 길을 걷는다. 두꺼운 껍질을 뚫고 나온 녹색의 잎은 꽃송이보다 예쁘다. 사람의 생김새를 기억하듯 나는 자주 지나다니는 길에 있는 은행나무들의 생김새를 낱낱이 알고 있다. 은행나무는 사람으로 치면 점잖은 품성을 지닌 듯하고, 잔꾀를 부리지 않고 묵묵히 삶을 감수하는 사람처럼 가지마다 품격이 느껴진다. 가을의 열매도 내겐 고향의 냄새처럼 친근하다. 늘 올려다보고 다니는 은행나무 아래서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릴 때였다. 그 동안 높은 가지만 올려다보고 다니느라 몰랐는데, 그 아래 원줄기에는 무수히 많은 스테이플러 심이 박혀 있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그곳에는 언제나 온갖 종류의 전단지가 붙어 있곤 했다. 수피가 두꺼워 나무는 정작 고통을 못 느낄 테지만 강변의 모래알처럼 박힌 스테이플러 심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은 불편했다. 그걸 뽑는 동안 신호가 계속 바뀌고 손톱이 갈라져 너덜거렸다. 나중에 송곳을 가지고 다시 와서 뽑을까, 하는 마음을 다잡으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있을 때 중국 관광객과 일본 관광객들이 눈길을 보내며 지나갔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조용히 웃었지만, 웃음에는 어떤 조롱도 담겨 있지 않았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한가한가 보죠?” 하는 말에 담긴 비웃음을 자꾸 곱씹게 한 자는 아는 사람이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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