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800만명 사용… 정부 판정 피해자는 빙산의 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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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800만명 사용… 정부 판정 피해자는 빙산의 일각”

입력
2016.04.3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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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 수년 뒤 나타날 수도 있어

피해자 160만명 넘을 가능성

정부, 폐 섬유화만 인과관계 인정

폐렴, 천식 등 다른 증상은 제외

“피해 범위 속단할 수 없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IFC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모임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연 옥시 규탄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아내와 아이를 둔 한 남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시민들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정부 발표처럼 95명이 맞는 것일까.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의 조사가 이미 실시됐지만 피해자 신고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과학적으로 채 해명 안 된 여러 증상들의 인과관계, 독성물질 등에 대한 규명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밝혀야 한다.

잠재적 피해자 수 200만명?

정부는 2013~2015년 1ㆍ2차에 걸쳐 530명(사망자 143명)의 접수를 받아 조사한 결과 이 중 221명(사망자 95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이 거의 확실(1단계)하거나 가능성이 높다(2단계)고 인정했다. 하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가 4일까지 접수한 피해자는 1,528명(사망자 239명)으로 정부 조사 대상보다 훨씬 많다. 물론 정부 조사도 3차(752명 접수)가 진행 중이고 4차도 실시될 예정이라 피해자로 판정될 이들이 더 늘겠지만, 가습기 살균제가 2001년부터 시판된 것을 감안하면 원인도 모른 채 피해를 입은 이들이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 수를 훨씬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난해 12월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2.0%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었고, 사용자 5명 중 1명은 ‘호흡기 질환 등 건강상 피해가 있었다’고 답했다. 이를 토대로 센터는 1,087만명이 살균제를 사용해 이중 227만명이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민관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는 살균제 사용자 수를 약 800만명으로 추산했는데, 그렇다면 피해자 규모는 160만명 수준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증상이 수년 뒤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자신이 피해자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피해 규모를 기껏해야 수천명 수준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4단계 피해자들도 후유증 심각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3단계(가능성 낮음), 4단계(가능성 없음)로 판정해 치료비 지원대상에서 배제한 이들도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폐 섬유화가 확인된 경우만 1, 2단계로 인정했고, 폐 손상이 있더라도 지병이 있었거나 폐 손상 외 다른 질환이 나타난 경우는 3, 4단계로 판정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의 폐해를 폐 섬유화가 전부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2000년부터 5년 가까이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조모(58)씨는 “가습기 살균제로 아프기 전까지는 감기가 뭔지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살균제 사용 1년 만에 간질성 폐질환을 진단받았고 2012년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지금도 각종 피부 질환에도 시달린다. 1차 조사에 접수했으나 4단계 판정을 받았다. 납득할 수 없어 재심을 신청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조씨는 “달랑 2장짜리 판정 문서에는 건강했던 내가 어떻게 폐질환을 얻었고, 그게 왜 살균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인지 설명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조씨처럼 3, 4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가 1, 2차 조사 대상 530명 중 절반이 넘는 303명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8일 3, 4단계 피해자들도 5명 중 1명 꼴로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피해자 34명이 폐렴과 비염, 천식, 편도염 등에 시달린다는 의료기록 분석 결과다. 심 의원은 “폐 섬유화만 인정하고 나머지 질환들을 제외하는 행태는 피해자들 고통을 왜곡하는 처사”라며 “다른 질환까지 확대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2년 폐손상조사위 위원장을 맡았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동물 실험에서 살균제 성분이 심장이나 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소견도 있는 만큼 피해 범위를 속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최주완씨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가습기 살균제 3, 4등급 피해자의 의료기록 분석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다른 제품들은 과연 안전한가

피해를 유발한 유독물질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뿐이냐는 의문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동물실험 결과를 토대로 PHMG와 PGH가 포함된 제품 6종에 대해서만 강제수거 명령을 내렸다. 클로로메칠이소치아졸리논(CMIT)과 메칠이소치아졸리논(MIT)은 폐 손상 원인으로 지목되지 않아 애경 가습기메이트 등 다른 제품들은 검찰 수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하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는 1, 2차 조사 대상 중 CMIT와 MIT 성분 제품을 사용한 167명 가운데 사망자가 37명에 달한다며 유해성을 의심하고 있다. 2009년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한 이모(40)씨는 1년 뒤부터 최근까지 천식 탓에 숨을 쉬는 일이 버겁다. 하지만 정부 조사에서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그는 “왜 하필 살균제를 사용한 시점에 천식이 생긴 건지 정부가 밝혀주길 바랐지만 공무원들은 ‘전문가들 판단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피해자들이 사용한 제품은 총 14종인데 동물실험을 한 것은 3종뿐”이라며 “지금껏 드러나지 않은 유해 물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법 제정으로 전면 조사해야

정치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특별법 제정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원인을 전면 재조사하고, 피해자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담은 특별법 공동 발의를 제안했고 여야 모두 이에 호응하고 있다.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는 “민ㆍ형사상 공소시효가 임박한 경우가 많은데 특별법을 만들면 시효가 지나더라도 가해자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석면 피해자들이 요양생활수당을 받는 것처럼 장기적인 보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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