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3 총선이 끝난 지 반 달이 지났는데도 선거구 곳곳을 찾아 다니며 인사를 하고 다니는 낙선자들이 있다. 심신이 녹초가 되고 가슴은 쓰라리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마지막 남은 기력을 짜내는 것이다. 물론‘그 동안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 드린다’는 등의 플래카드로 낙선인사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선거 때와 다름 없이 지성으로 감사 인사를 하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은 강한 인상을 갖기 마련이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가 참패 지역인 광주를 시작으로 권역별로 당선 및 낙선 인사를 다니는 것도 인상적이다.
▦ 발품에 더해 가슴 찡한 문구를 내걸면 유권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서울 서대문 을에서 야당 거물정치인 김상현 의원에게 도전해 석패한 신한국당 이성헌 후보는 “낙선에 울지 않고 여러분의 성원에 웁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내걸어 심금을 울렸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낙선인사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는 연세대 81학번 동기이자 필생의 라이벌인 더민주 우상호 후보에게 패했지만 16대, 18대엔 금배지를 달았다.
▦ 강한 인상을 준 낙선인사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것을 빼놓을 수 없다. 14,15,16대 총선과 1995년 부산시장 선거 등 부산서 거푸 고배를 마셨던 그다. 2000년 16대 총선 낙선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아픔을 잊는 데는 시간이 약이겠지요.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라고 쓴 뒤 “노무현은 그래도 부산을 사랑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낙선인사를 다녔다. 이번에 야당 불모지 부산에서 더민주 깃발로 당선된 김영춘 김해영 박재호 전재수 최인호 등 5명은 그 정신을 이은 ‘노무현 키즈’들이다.
▦ 비박 공천학살로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했다가 낙선한 조해진 의원은 4개 복합지역구(밀양 의령 함안 창녕) 53개 읍ㆍ면ㆍ동을 자연부락까지 돌며 낙선인사를 했다. 녹초가 됐지만 26일부터 의원회관에 출근해 국회선진화법, 중대선거구전환 선거법 개정안 등 자신이 추진했던 법안을 정리 중이라고 한다. 그처럼 낙선은 했지만 임기 마지막 날까지 소임을 다하려는 의원들이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는 그들에게 권토중래의 날이 올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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