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에 온 손님
황선미 글ㆍ김종도 그림
비룡소ㆍ32쪽ㆍ9,000원
혼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탄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낯선 남자가 급하게 따라 들어온다. 등 뒤에 남자가 섰다. 뉴스에서 흔히 보던 범죄 장면이 떠오르자 머리털이 곤두선다. 천만다행으로 남자가 먼저 내린다. 며칠 후,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마주친 남자는 갓난아기를 안고 부인과 함께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두려움과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이들은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문밖의 세상은 위험한 것들로 가득하다. 서로의 신원을 알 수 없는 도시 사람들에게 무관심과 불신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어른들은 ‘늑대와 아기돼지 삼형제’를 읽어준다. 문밖의 낯선 사람에게는 절대 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도시에서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기도 전에 울타리 안에서 갇혀 사는 법을 먼저 배운다.
‘빈 집에 온 손님’은 ‘마당을 나온 암탉’의 동화작가 황선미가 쓰고, 화가 김종도가 그렸다. 2002년 발간 후 그림책으로서는 드물게 올해 재출간되었다. 책의 줄거리는 ‘빨간 두건’을 연상시킨다.
금방울은 할머니 댁에 간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비가 오려 한다. 금방울은 빈 오두막에서 놀고 있을 동생들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동생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난로 앞에서 불을 쬐고 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금방울이 문틈으로 내다보니 시커먼 덩치가 문 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여우남매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인 채로 불청객이 사라지기만 기다렸다. 설상가상, 막내가 잠투정을 하기 시작했다. 담요를 만지며 자야 하는데 오두막에 두고 온 것이다. 금방울은 세찬 비가 내리치는 밤길을 홀로 나섰다. 음산한 오두막에서 덩치를 마주친 금방울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도대체 덩치의 정체는 무엇일까? 놀라운 반전이 펼쳐진다.
글 작가 황선미는 타고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쥐락펴락 독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면서도 그 속에서 명확한 주제의식은 놓치지 않았다. 그림작가 김종도는 동화 속 풍경을 실제 있는 장소처럼 묘사해 놓았다. 비 갠 초원의 시원한 들풀향기가 코끝에 감길 듯이 생생하다. 멋진 영화를 보다 보면 시나리오와 카메라를 잊게 된다. 그저 그 사건에 몰입하게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글과 그림의 싱크로율은 완벽해 보인다.
첫 발간 후, 14년이 지났으니 이 그림책을 보던 아이들은 청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그림책을 곁에 두자. 당신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고향집이 되어 줄 것이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