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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딸기 상자

입력
2016.04.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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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틀에 반죽을 넣으면 똑같은 크기의 붕어빵이 부풀어서 익어 나온다. 그런데 자연의 소출은 그렇게 ‘틀에 박힌’ 물건이 아니다. 고구마를 캐보면 주먹보다도 더 큰 탱탱한 뿌리가 있고 그 옆에 울룩불룩 덩치가 조금 작은 것이 한두 개, 그리고 매끈하고 가느다란 새끼손가락만 한 자잘한 뿌리도 몇 개 있다. 토질 때문인지 막대기같이 길쭉하게 땅속으로 파고든 놈도 있고 감자처럼 둥글둥글 생긴 놈도 있다. 고구마를 직접 심어서 가꾸었다면, 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 못생긴 놈이나 잘생긴 놈이나 모두 제 자식같이 애틋하고 소중하기만 하다. 그런데 마트에 가서 고구마를 살 때면 꼭 크지도 작지도 않은 놈에 때깔 좋고 값도 싼 것을 골라야 한다. 고구마가 빵틀에 찍혀 나오는 붕어빵도 아니건만!

엄마가 사온 실해 보이는 딸기 상자를 열었더니, 저 밑바닥에 어린 “코흘리개” 막내 딸기가 덩치 큰 형 딸기와 통통한 누나 딸기까지 겹으로 업고 오느라 “문드러지고 멍들”었다. 오오, 통통한 누나와 덩치 큰 형이 코흘리개 꼬맹이를 업고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범인은 누구인가? 상자 속 딸기를 역삼각형으로 쌓아 올린 농부란 말이냐? 1층 위에 2층, 2층 위에 3층을 잘도 쌓은 농부의 기술을 연마시킨 것은 누구란 말이냐? 아니지, 저런 모양의 3층을 쌓은 것은 농부일 리가 없지…… 때깔 좋고 잘생기고 값싼 것만을 찾아 순례하는 나의 눈과 손이 진범이지!

이정록은 팔방미인이다. 시로 등단해 동시를 넘보더니 어느새 동시집이 세 권째다. 청소년시도 쓰고, 동화와 그림책 글도 썼다. 말 펀치는 얼마나 센지 조선 ‘왕구라’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소팔, 고춘자와 겨뤄도 꿀리지 않을 듯하다. ‘딸기 상자’는 이정록표 만담 동시로 읽어도 좋지 않을까. 충청도식 의뭉스러움, 겉에는 상처를 전혀 내지 않고 은근슬쩍 찔러오는 공격성. 밑바닥에 깔려 있는 슬픔 한 자락. 이정록표 동시들은 ‘지구의 맛’을 다 “핥아보고/알려 주”(‘달팽이’)겠단다. 정록아, 살살 하그래이!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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