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투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나
피해만 강조하는 일본의 착시
퇴행적 역사타협은 안 된다
미국은 왜 히로시마ㆍ나가사키 원폭 투하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전쟁을 일찍 끝내 더 이상의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지만, 엄청난 인적 피해를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두 도시에서 무려 23만 명 이상이 희생됐고, 피폭자는 두 배가 넘는다. 한국인도 사망자만 4만 명에 이른다. 일본의 항복 이후 전후처리 과정에서 패전국 일본이 유례없이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도 원폭투하 배경을 의심케 한다. 주지하듯 미국은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에서 패전국 일본에 배상적ㆍ징벌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전쟁 청산보다는 공산세력 저지를 위한 일본의 전략적 가치를 우선시한 것이다. 원폭투하가 소련의 참전에 앞서 일본 점령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냉전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피폭이라는 인류 초유의 재앙을 겪은 일본이 미국의 원폭투하에 이중적 입장을 취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떨어진 직후 비인도적 만행을 비난하며 국제법 위반까지 미국에 주장했던 일본은 이후 미국이 주도한 전후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원폭책임론에 철저히 함구했다. 일본 내 반핵평화 운동도 주로 핵무기의 잔인성, 비인도성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이렇다 보니 원폭투하의 주체와 원인, 책임은 흐릿해진 채 원폭의 반인도적 성격만 강조되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일본이 원폭투하를 초래한 전쟁책임까지 부정하고 일본 국민 대다수의 기억 속에 전쟁행위에 대한 반성이 아닌, 절대악으로서의 전쟁이라는 관념만 남게 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일본인에게 히로시마는 태평양전쟁의 상징이다. 히로시마라는 단어에 일본인의 고뇌가 응축돼 있다. 그들에게 히로시마는 아우슈비츠와 같은 절대악의 상징이다.” 네덜란드 출신 미국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 이안 부루마가 본 히로시마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를 동일시하는 일본국민의 집단착시는 원폭투하에 대한 역사인식 부재로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원폭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원공원을 방문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침략전쟁에 대한 일본의 진지한 반성이 없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공원 방문은 일본의 역사부정을 용인하고 일본에 원폭피해자 코스프레만 부각시킬 뿐이라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집요하게 추진해온 일본 정부와 언론은 오바마의 방문을 기정사실화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위기다.
오바마 대통령이 가야 한다, 가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취임 초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와 전략핵탄두를 1,550기 이하로 줄이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을 이끌어냈다. 지난해에는 이란과 역사적 핵협정도 도출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핵 비확산의 의미를 알리고, 한편으로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에 핵감축 동참을 촉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핵도발을 감행하는 북한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핵폭탄 시대를 연 히로시마에서 핵무기의 종식을 선언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전쟁책임을 망각하고, 특히 우파 아베 정권이 노골적 군사대국화에 나선 상황에서는 그런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우리도 한국인 피폭자 문제를 안고 있어 판단이 쉽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의 평화공원 방문 여부는 미국 정부가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평화공원 방문보다 중요한 건 원폭투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진지한 성찰이다. 히로시마가 일본인에게 아우슈비츠처럼 비쳐지게 된 데는 원폭문제를 회피하는 소극적 태도를 취해 온 미국 책임이 크다.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면 원폭투하를 놓고 반세기 넘게 계속된 미국과 일본의 어정쩡하고 퇴행적인 타협을 끝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