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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트럼프 바람’과 ‘4.13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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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트럼프 바람’과 ‘4.13 바람’

입력
2016.04.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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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로 강력한 단일 국가지만,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50개 주가 독립국가처럼 돌아간다. 주마다 독특하다 못해 황당한 법이 존재한다. 켄터키 주 의회에서 최근 논의되는 ‘비아그라 구매법’도 그런 부류다. 여성 의원인 메리 루 메르지안이 발의한 ‘비아그라 구매법’은 남편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구매하고 복용하려면 미리 아내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비아그라 구매법’ 못지않게 여러 주의 이색 법률이 등장한다. 아칸소 주의 ‘아내 구타법’도 있는데, ‘남편이 두께 3인치(7.62㎝) 미만 몽둥이로 월 1회 아내를 때리는 건 합법’이라는 내용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사실로 여기지만, ‘어떻게 잘못 알려지기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주에 그런 법이 없다’는 게 아칸소 주립 도서관의 공식 해명이다.

‘황당 법률’얘기를 꺼낸 건 ‘아내 구타법’으로 유명한 아칸소 주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그는 남편(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주지사 당선으로 1980년대에는 아칸소의 젊은 ‘퍼스트레이디’였다.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였던 아버지(휴 엘즈워드 로댐ㆍ1911~93) 때문에 20대 초반까지 공화당원이던 그는 올 가을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갈아 탄 도널드 트럼프와 대결할 가능성이 높다.

클린턴 전 장관은 경선 승리 과정에서 버몬트 주 상원의원인 버니 샌더스 돌풍에 시달렸다. 2월1일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공식 경선전 막이 오른 뒤, 민주당 진영에서는 서민ㆍ젊은층을 중심으로 샌더스 바람이 갈수록 거세졌다. 무료 대학 등록금, 월가 대형 금융기관 해체, 소득세율 인상 등 다분히 선동적인 공약에 호응한 수십만 명이 소액 기부에 나서면서, 샌더스의 정치 자금이 클린턴을 앞서기도 했다. 기세가 한창일 때는 한국의 정치인들마저 후광을 얻으려고 샌더스 진영에 줄대기 바빴다.

클린턴이 거센 바람을 극복한 이유는 뭘까. 클린턴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경선제도 탓이다. 득표율에서 근소하게 앞서기도 하지만 28일 현재 확보 대의원은 2,168명 대 1,401명으로 클린턴이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 이는 7월 전당대회에서 당연직 대의원으로 나설 민주당의 기득권 세력 즉 ‘슈퍼 대의원’대부분이 클린턴 편이기 때문이다.

소수 인종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중시하는 민주당에서‘슈퍼 대의원’ 존재는 모순적이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유산이다. ‘슈퍼 대의원’전통은 미국의 위대한 재무장관으로 불리며 10달러 지폐 인물인 알렉산더 해밀턴 등에서 비롯된다. 해밀턴을 비롯한 연방주의자들은 건국 초기 ‘중우(衆愚) 정치’를 우려해 제도 곳곳에 엘리트 집단의 견제 장치를 마련했는데, 따지고 보면 슈퍼 대의원도 그런 유산의 하나일 수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제 본선에서 또 다른 바람을 제압해야 한다. ‘트럼프 바람’이다. 이 바람은 밖에서 보면 누가 봐도 잘못됐지만, 미국 안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현실에 막연한 불만을 품은 서민층 백인 사이에서 강한 흐름이 감지된다. 미국 시민사회와 엘리트 집단의 자정 능력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예측시장은 클린턴 당선 확률(74%)을 트럼프(20%)보다 세 배 가량 높게 보고 있다.

이쯤에서 폭풍이 불어 닥친 한국의 ‘4.13 총선’도 생각해 본다. 정치권과 언론은 관성적으로 유권자들의 ‘절묘한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북핵 사태, 구조조정, 노동시장 개혁 등 객관적 여건을 감안하면 한국 밖에서는 ‘3당 할거’구도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4.13’바람은 폭발력만큼 제대로 방향을 잡아 현안 처리의 원동력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4.13 바람’은 ‘트럼프 바람’ 수준으로 전락할 뿐이다.

조철환ㆍ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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