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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촘스키가 반유대주의자 처벌을 반대한 이유

입력
2016.04.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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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ㆍ11 이후 조지 W.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하자 프랑스 정치가와 지식인은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미국의 골수 공화당원들은 자신의 승용차에 ‘먼저 이라크, 나중에 프랑스’라는 섬뜩한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한편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9ㆍ11의 원인이 미국의 잘못된 외교정책에 있다는 주장을 담은 ‘9-11’(김영사,2001)을 펴내 미국인의 분노를 샀다. 이런 사실만 보면 촘스키는 프랑스에서 대단히 인기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금기의 대상이다.

1979년, 프랑스 리용2대학에서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로베르 포리송 박사는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거짓말”이며 “히틀러에 목숨을 잃은 유대인은 다행스럽게도 한 사람도 없었다”는 논문으로 법정에 기소되었다. 그러자 박해를 받지 않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요청하는 국제적인 탄원서가 작성되었다. 촘스키는 친구의 요청으로 500명의 서명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서명자 가운데 그가 가장 유명했던 탓에 프랑스 언론은 이 탄원서를 ‘촘스키 탄원서’라고 불렀다. 촘스키는 이 일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자, 네오나치주의자, 유대인을 혐오하는 인종주의자로 낙인 찍혔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11개국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처벌한다. 자신의 웹사이트에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글을 게재한 캐나다 거주 독일인 에른스트 춘델은 캐나다의 범죄인 인도에 따라 독일에서 재판에 회부되었고(2007년), 같은 죄를 저지른 호주 역사가 프레드릭 퇴벤을 독일 내에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결을 했다(2000년). 또 오스트리아 법원은 같은 혐의로 기소된 영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에게 3년 징역형을 선고했다(2006년).

한국인 중에도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수정주의 역사관을 지닌 연구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부르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유럽의 특수한 역사에서 나온 저 법은 결코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게 아니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이 만들어 진 것은 자기(유럽) 문명 속에서 인종살해가 벌어진 것을 막지 못했던 것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와 막강한 이스라엘, 유대인 압력단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유럽인의 병을 함께 앓아야 할 이유나 이스라엘 유대인의 압력을 자청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포리송과 같은 주장을 한다면 ‘또라이’라고 비웃어 줄 테지만, 그가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재판을 받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다. 오늘의 유럽인에게는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홀로코스트 재발 방지법’이 더 긴요하다. 그런데 11개국 어디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격리하기 위해 세운 ‘팔레스타인 장벽’을 새로운 홀로코스트라고 비난하고 있는가. 저 위선적인 법에 침을 뱉자.

드니 로베르와 베로니카 자라쇼비치가 촘스키와 했던 인터뷰를 정리한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시대의창,2002)에서 촘스키는 “나는 포리송의 글을 전혀 읽지 않았”으며,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데 그 내용을 검토할 이유는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포리송이 “반유대주의자고,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정말로 신나치주의자라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표현의 자유까지 박탈당해서는 안 되며, 표현의 자유는 어떤 이유로도 제한될 수 없는 권리”이다.

로버트 F. 바스키는 ‘촘스키 이펙트’(시대의창,2009)에서 이 문제를 더욱 넓고 자세하게 다뤘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아더 버츠가 포리송과 동일한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지만, 미국 법조계 언론계 어디서도 프랑스식 소동은 없었다. 촘스키는 그 까닭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국과 프랑스의 기준이 전혀 다른 때문이라면서, 프랑스 법조계와 지식사회를 “스탈린주의를 숭상하는 자들” “인민위원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규탄한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한 가지 예외를 허용하면, 또 다른 경우를 위한 예외가 만들어지는 것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하여 표현의 자유는 표현할 수 없는 자유가 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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