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이 사는 동네는 이름이 예쁘다. 산마을이라는 곳이다. 집 뒤에는 남산이 있고 바로 집 앞은 매봉산이 있다. 이름을 참 잘 어울리게 지었다. 창문에서 보이는 것은 산뿐이라 빌라가 서울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도 매일 휴양지에 쉬러 와 있는 기분이다. 내가 한국에서 받은 큰 선물이다.
산이 없는 파리에서 오래 살다가 서울에 이사와 매봉산에 가깝게 살아보니 한국사람처럼 산에 자주 올라가 산책하게 됐다. 산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갖다 준다. 긴 겨울을 지나 번개처럼 순식간에 봄이 오면 산에 올라오는 사람이 많아진다. 다시 깨어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생명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산이 좋은 것 같다. 등산하는 사람에게 목련꽃, 진달래, 개나리, 벗꽃, 매화꽃 등 봄에 예쁘게 피는 꽃들을 만끽하는 것뿐 아니라 숨결을 따라 걷는 것이 삶의 한 부분이 되는 듯하다. 날씨가 좋든 궂든 춥든 덥든 평일이든 노는 날이든 낮이든 밤이든 늘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다는 걸 봐서 한국사람은 산이랑 같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런데 아름다운 자연 산 한 가운데 각종 운동 기구들이 구석구석 설치되어 있는 걸 보고 놀란다. 산은 산이 아니라 헬스클럽인가 싶을 정도다. 매봉산이 특히 그런 것 같다. 그 산의 관할이 용산구, 중구, 성동구 세 개 구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각 구청에서 구민들에게 서로 잘 보이려고 경쟁이라도 하듯이 새로운 운동기구를 갖다 놓는 건가. 아니면 돈을 어디다가 써야 하는지 생각이 없어서 산에다 투자하는 건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앉을 수 있는 평상 같은 것은 괜찮지만, 기구들이 자연의 균형과 미관을 깨뜨리는 것 같다.
물론 야외에서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비싼 헬스클럽을 못 다니는 사람들이 집 근처에 있는 산에 가서 운동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운동시설을 설치해 조금이나마 보살펴 줄 수 있다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이 이만큼 복지국가가 되었다는 것도 분명히 축하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설에 지나치게 투자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닌 듯하다. 안전장치가 꼭 필요하지 않은 길목에 울타리를 치고 계단도 만들고 하니 어떤 때는 공사판이 돼버린 느낌이다. 목재 같은 좋은 재질을 사용해 자연스럽게 산의 분위기를 살리면서 작업했을 때에는 좋았지만 점점 플라스틱이나 철재를 섞어 조화롭지 않은 모습이 되는 걸 보면서, 어쩜 이렇게 미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 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것은 문화 차이로도 볼 수 있겠다. 한국 사람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산에 올라가는 반면에 프랑스 사람은 자연을 즐기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사람은 산에서 운동하는 것 보다 그 곳에 자라는 나무, 식물 등을 보고 새 소리를 들면서 쉬는 경우가 많다. 자연의 소리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듯 계속 라디오나 녹음된 트로트나 찬송가를 들으면서 산을 몇 바퀴씩 열심히 도는 한국인들은 반대로 자연의 소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인다. 산은 한국사람에게는 휴식의 공간이라기 보다 뭔가 목적을 실행하러 가는 곳 같다.
요즘은 옛날같이 약수를 뜨러 산에 가는 일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봄이 되면 나물 캐러 산에 올라가는 아주머니가 있다. 얼마 전에 진달래 꽃잎을 비닐 봉투에 가득 담은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나는 이중적인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아직 진달래 술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돼서 기뻤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아름다운 진달래 꽃이 가차없이 따버려 진 걸 보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봄에 한 순간 피는 진달래 꽃잎을 보호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 생각을 했다가 꽃잎을 따는 그녀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마음이 예뻐 보이기도 했다.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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