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이랬다.
“그는 외로 꼬고 나를 응시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 안광 앞에서 나는 다시금 화끈화끈 몸이 달아오른다. 눈만 가지고 나를 요리하고 있네. 어떻게 이렇게 되지?”
그 다음 만남은 이랬다.
“나는 살갗이 화끈 달아오른다. 아, 지금 막 당신의 두 손이 내 넓적다리를 더듬고 당신의 치아가 내 가슴살을 잘근잘근 깨무는 상상을 하고 있었어요.”
그 다음 만남은 이렇다.
“갑자기 우리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며, 그의 기다린 손가락들이 내 온 몸을 쓸어만진다. “당신을 요리하고 싶어.” 그가 속삭인다. “통째로.” 아, 어쩌면 좋아. 내 몸이 속에서부터 뜨거워진다.”
이쯤 표지를 보니 왼쪽 윗부분에 한 문장이 또렷하다.‘요리책으로 패러디했습니다.’ 황금가지 출판사가 내놓은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엄마들의 포르노라 불렸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패러디다. 젊은 억만장자 크리스천 그레이는 화려한 주방을 갖춘 요리의 달인 ‘칼잡이’로, 영문학과 졸업반 아나스타샤 스틸은 ‘순진한 영계’로 대체됐다. 그러고 보니 끈에 묶인 닭이 요염한 포즈로 빼뚜름하니 누워 있는 표지 사진을 봤을 때부터 예감했어야 했다.
금욕으로 점철된 자기계발의 시대에 한줄기 위안의 빛을 던져주기 위해, 먹방이니 뭐니 하는 음식 포르노들이 차고 넘친다는 요즘이다. 이 때 이런 책이 안 나온다면 오히려 이상할는지 모르겠다. 사진까지 그렇다. 음식 포르노에 걸맞게 음식 사진의 색감, 질감은 찰지고 가끔 등장하는 칼잡이씨는 꼭 웃통 벗고 복근을 자랑하거나 팔뚝에는 힘줄을 돋을새김하고 있다.
이 책은 요리책이 아니라 소설로 분류됐다. “소개하는 음식이 미국의 가정식 정찬 느낌이라 우리나라에는 본격적인 요리책으로 소개하기엔 무리가 아닐까라고 판단했다”는 게 출판사의 대답이다. 재미난 읽을거리 아니겠냐는 얘기다.
평소 ‘1인 1닭’(닭 애호가에게 ‘반마리’는 굴욕이다), ‘1주 1닭’(닭 애호가라면 적어도 한 주에 한 마리는 모셔야 한다)을 주장하는 마나님께 자문을 구했다. “요즘은 오븐이 제법 많이 보급됐고, 외국 향신료도 다양하게 나와 있어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는 답이 돌아온다. 면밀한 검토 끝에 몇 가지 요리를 시도해보겠단다. “그럼 닭 묶는 건 내가 할까?” 아침 문자에 아직까지 답이 없다.
조태성 기자 amor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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