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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춤의 날

입력
2016.04.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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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4월 29일

오늘은 세계 춤의 날이다. 춤을 널리 즐기자는 날이지만, 일상의 몸짓들을 춤이 되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앙리 마티스의 '춤'.
오늘은 세계 춤의 날이다. 춤을 널리 즐기자는 날이지만, 일상의 몸짓들을 춤이 되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앙리 마티스의 '춤'.

원시 인류에게 표정과 손발짓 허릿짓은 소통의 필요와 함께 시작됐을 것이다. 그것은 성대를 울려 낸 소리가 말이 되기 전부터 소리와 더불어 정교해지고 풍성해졌을 것이다. 처음엔 소리조차 성대의 짓, 다시 말해 넓은 의미의 몸짓의 하나였을지 모른다. 소리가 음성언어가 되고 소통의 독점적 권력을 쥐게 되면서 몸짓은 점차 덜 중요해졌다. 문자가 등장한 건 5000년 전이었다. 이제 소통의 중심에는 문자가 있다.

몸짓은 ‘몸짓언어’라는 말로써만 간신히, 다시 말해 언어의 일부로서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물론 실생활에서 몸짓은 언어의 보조재가 아니다. 둘은 상호구성적이고 상호보완적이다. 몸짓언어는 자주 음성언어와 맞서서 그 이면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둘이 상보적인 건 둘이 상호독립적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몸짓이 춤이 된 건 소리에 감정이 실려 탄성이나 절규가 되고 훗날의 시와 노래와 희곡이 된 것처럼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것이다. 소리언어가 기도가 되기 전 기도를 대신한 게 몸짓이었고, 세레나데가 되기 전 구애를 대신한 게 포옹이었을 것이다. 기도도 포옹도 춤이었을 것이다.

음악이 먼저냐 춤이 먼저냐는 의문도 사실 무의미하다. 춤이 허전해서 장단이 시작됐을 수도 있고, 우연한 장단에 어깻짓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 춤 없는 음악도 있고 음악 없는 춤도 있었을 것이다. 그 둘도 하나로서 온전한 전체일 수 있다는 의미, 존재론적 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상관의 관계에 있다는 의미다.

4월 29일은 세계 춤의 날(International Dance Day)이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댄스위원회가 1982년, 18세기 프랑스의 전설적 발레 안무가 장 조르주 노베르(Jean Georges Noverre, 1727~1810)의 생일을 기념해 제정했다. 예술로서의 춤의 가치를 부각하고 문화로서의 춤의 의미를 되새기며, 일상 언어로서의 몸짓의 중요성을 깨달아 더 널리 향유하자는 취지였다.

그건 춤이 일상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위기감을 방증한다. 이 날 세계의 춤 관련 단체와 교육기관, 전문가와 애호가들은 저마다 다양한 기획에 따라 춤을 즐기고 선뵌다. 춤을 위해선 더 넓은 멍석을 까는 게 아니라 있는 멍석을 걷어내는 일이라 여기는 이들도 물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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