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4월 29일
원시 인류에게 표정과 손발짓 허릿짓은 소통의 필요와 함께 시작됐을 것이다. 그것은 성대를 울려 낸 소리가 말이 되기 전부터 소리와 더불어 정교해지고 풍성해졌을 것이다. 처음엔 소리조차 성대의 짓, 다시 말해 넓은 의미의 몸짓의 하나였을지 모른다. 소리가 음성언어가 되고 소통의 독점적 권력을 쥐게 되면서 몸짓은 점차 덜 중요해졌다. 문자가 등장한 건 5000년 전이었다. 이제 소통의 중심에는 문자가 있다.
몸짓은 ‘몸짓언어’라는 말로써만 간신히, 다시 말해 언어의 일부로서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물론 실생활에서 몸짓은 언어의 보조재가 아니다. 둘은 상호구성적이고 상호보완적이다. 몸짓언어는 자주 음성언어와 맞서서 그 이면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둘이 상보적인 건 둘이 상호독립적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몸짓이 춤이 된 건 소리에 감정이 실려 탄성이나 절규가 되고 훗날의 시와 노래와 희곡이 된 것처럼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것이다. 소리언어가 기도가 되기 전 기도를 대신한 게 몸짓이었고, 세레나데가 되기 전 구애를 대신한 게 포옹이었을 것이다. 기도도 포옹도 춤이었을 것이다.
음악이 먼저냐 춤이 먼저냐는 의문도 사실 무의미하다. 춤이 허전해서 장단이 시작됐을 수도 있고, 우연한 장단에 어깻짓이 시작됐을 수도 있다. 춤 없는 음악도 있고 음악 없는 춤도 있었을 것이다. 그 둘도 하나로서 온전한 전체일 수 있다는 의미, 존재론적 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상관의 관계에 있다는 의미다.
4월 29일은 세계 춤의 날(International Dance Day)이다. 유네스코 산하 국제댄스위원회가 1982년, 18세기 프랑스의 전설적 발레 안무가 장 조르주 노베르(Jean Georges Noverre, 1727~1810)의 생일을 기념해 제정했다. 예술로서의 춤의 가치를 부각하고 문화로서의 춤의 의미를 되새기며, 일상 언어로서의 몸짓의 중요성을 깨달아 더 널리 향유하자는 취지였다.
그건 춤이 일상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위기감을 방증한다. 이 날 세계의 춤 관련 단체와 교육기관, 전문가와 애호가들은 저마다 다양한 기획에 따라 춤을 즐기고 선뵌다. 춤을 위해선 더 넓은 멍석을 까는 게 아니라 있는 멍석을 걷어내는 일이라 여기는 이들도 물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