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사건들이 유난히도 잦았던 지난 며칠이었다. 위기에 빠진 해운업과 조선업에서 공적기금을 투입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예견되면서 혹시나 그 동안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차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사회적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근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채권단 공동관리가 예정된 기업의 전 대주주 일가는 보유주식을 미리 팔아 치운 일이 일어났다. 최근 기업들이 내세워 온 사회책임경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이나 비용을 사회화하는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거기에 아름다운 기업을 표방하면서 기부에 앞장서고 여성가장을 지원하거나 학술연구나 문화행사를 후원해온 기업마저 창업주의 가족이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조세를 회피하고 자산을 은닉한 것으로 드러난 것도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 와중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어버이연합의 돈줄이 전경련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데 이어 개별 대기업들까지도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보수단체들을 지원해 온 사실까지 접하고 보니, 솔직히 한국사회에서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과연 물을 수 있기나 한 것인지 회의가 들 지경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책임은 물론 법적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과제로는 현재 1,500명이 넘는 피해자가 접수되고 그 중 사망자만도 239명에 달한다는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있다. 안전하며 인체에 무해하다는 문구를 달고 제품으로 공식 출시되어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제품이 많은 사망자를 낳았고, 그 중 어린이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영구적인 손상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법적 책임을 묻는 일련의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은 분노스럽기 짝이 없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기업인 옥시는 최초의 사망피해자 확인 후 벌써 5년 동안 피해를 보상하고 사과하기보다는 안전하다고 우기면서 합의를 시도하였고, 대학에 의뢰한 독성실험에서는 조작을 요청했다. 심지어 기업조직은 그대로 두고서 회사의 명칭과 형태를 바꾸면서까지, 법적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준비를 착실하게 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법적 책임회피를 치밀하게 진행해올 수 있었던 데는 이를 충실하게 조력해 온 법률기업, 즉 로펌의 역할도 컸다. 옥시 측 대변자인 이름난 로펌은 역학적으로 인과관계가 매우 뚜렷하다고 결론이 난 상황에서조차 역학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면서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필시 기업 명칭과 형태를 바꾸는 과정에서도 법률자문은 필수였을 것이다. 법률기업은 종종 자신의 이익만을 냉혹하게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회적 책임 문제가 이제껏 제대로 공론화되지 않아온 데는 법을 진실을 밝히고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수단이라 믿는 이데올로기적 후광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점점 더 많은 사회적 쟁점들이 법정에서 결정되는 사회에서 민주적인 원칙들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법률기업의 명백하고 노골적인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사회책임경영이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압박이나 정밀한 규제의 압력 없이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고 봐야 현실적이다. 기업이미지 광고를 하고 좋은 행사에 후원을 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이 되지는 않는다. 노동자들의 일자리 및 건강에 대해서, 주주의 이익에 대해서나 소비자들의 안전에 대해서 기업이 아무런 책임지지 않아도 탈이 없는 사회에서, 기업 스스로 책임 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업의 무책임한 행태는 그간 민생이라는 이름으로 규제를 다 풀어서라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고 외쳐온 정치권과 이를 막지 못한 사회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오는 기업들의 문제를 이제라도 하나하나 제대로 짚어서 책임을 물려야 할 것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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