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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버리는 삶과 보물찾기

입력
2016.04.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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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 열풍이다. 서점에는 버리는 삶을 예찬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다. 몇 년 동안 한번도 입지 않은 옷과 신지 않는 신발, 읽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읽지 않을 책 등 쓸모없는 것들을 냉큼 치워버리고 가벼워지라고 한다. 나도 버릴 게 없나 둘러본다. 책장을 열어 보니 수십 년 된 대학교 교재랑 시집간 누나가 두고 간 당시를 풍미했던 책들이 눈에 띈다. 옷장 안쪽에 제대할 때 입고 나온 군복과 야상도 있고, 창고에는 1993년에 샀던 맥켄토시 컴퓨터도 있다(켜보니 띵- 소리를 내며 작동한다). 애틋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 물건들을 꼭 버려야 할까. 나는 잘 버리지 못한다. 잘 사들이지도 않으니 이 케케묵은 것들을 버리지 않더라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버려도 무방한 것과 남겨두어야 할 것.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특별한 기준이라도 있을까.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도 버릴 것과 남겨둘 것은 심사숙고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할 때는 가장 먼저 ‘보물찾기’의 시간을 갖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난데, 집 구석구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예상치 못했던 보물들을 찾아내고 상상하는 것이다. 옛 장인이 솜씨 좋게 지은 나무 계단, 한때 유행했던 계단 옆 주물 장식, 창을 보호하던 주물 창살, 누렇게 뜬 벽지 안쪽에 탄탄하게 서있는 벽돌들, 부엌 바닥에 깔린 알록달록한 타일... 한번은 다락방 벽에 가수 박남정의 사진이 붙은 것도 발견했다. 수십 년 전 신문 조각과 아이의 낙서가 가득한 벽지들이 서서히 햇볕 아래 드러날 때 전율이 스친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든 살려서 디자인에 반영하고 싶지만 건축주의 생각은 나와 다를 때가 많다. “그런 게 뭐 필요 있을까요?”라는 건축주의 한마디는 사형선고 같다. “아! 그거 재미있네요.”라고 슬쩍 눈길이라도 주면 희망의 빛을 얻은 듯 기쁘다. 주물 장식을 창 받침으로 쓸까, 아니면 벽면 장식? 계단 난간은 책상 다리가 되면 멋지겠는데! 이런 고민을 하면서 집의 재탄생을 꿈꾼다. 고민한 아이디어들이 모두 빛을 보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의 문제로, 예산의 문제로 실현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보물을 찾는 시간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 집을 더 잘 이해하고 집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물건이 넘쳐나고 늘 새것을 좇는 자본주의 시대에 집은 하나의 ‘물건’ 혹은 상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건물이 낡았다고 부수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마을까지도 없애고 ‘뉴타운’이 들어온다. 그 땅에 수백년 살아온 삶의 흔적은 순식간에 버려진다. 우리가 지나치는 무수한 동네에는 수리하지도 보수하지도 않는 아파트들이 넘쳐난다. 집을 고치고 손질해가며 오래 사용하기 보다는 재건축하는 게 이익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려면 집은 더 빨리 낡아야 하고 더 빨리 너덜너덜해져야 한다. 어느 건축주는 이렇게 물었다. “30년 된 집인데 안전할까요?” 콘크리트는 잘 관리만 하면 반영구적인 재료다. 유럽에는 로마시대에 지은 콘크리트 건물이 여전히 사용되는 사례도 많다. 왜 우리는 30년만 되도 낡은 집,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운 불안한 집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부서지고 사라지는 집들을 보노라면 수많은 보물들까지도 쓰레기 더미 속에 파묻어버리는 것 같다.

후배 하나는 한옥에서 쓸만한 자재들을 모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한다. 종로구청과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한옥철거 자재 재활용은행’이다. 한옥을 철거하면서 나온 대들보, 도리, 문짝, 주춧돌, 기와, 댓돌, 장대석 등 버리기 아까운 좋은 재료들이 가구나 담, 인테리어 요소로 다시 사용되기를 기다리는 곳이다. 질 좋은 원목 대들보로 식탁을, 오래된 세월이 가득 묻은 문짝으로 책상을 한번 만들어볼까 한다. 이런 보물찾기는 어떤가? 기대되지 않는가?

정구원 트임건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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