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고라고 믿었던 대우조선이 저 지경이 된 데에는 많은 이들의 ‘숨은 역할’이 있었다.
우선 산업은행. 대우조선 지분을 절반 가까이(49.7%) 갖고 있는 1대 주주다. 물론 산업은행이 좋아서 최대주주가 된 건 아니었다. 대우그룹 공중분해 이후 워크아웃 프로그램에 맞춰 대출금이 출자 전환됐고 산업은행은 어쩔 수 없이 대우조선을 떠안았다. 국책은행으로서 100%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었고, 그렇게 어느덧 16년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대주주가 됐으면 거기에 수반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데, 산업은행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덤핑입찰과 출혈수주가 얼마나 심각한지, 조직이 얼마나 방만한지, 이익이 어떻게 뻥튀기(분식) 되었는지 깜깜하기만 했다. 안 본건지 아니면 들여다봤는데도 몰랐는지, 무능했거나 무책임했거나 둘 중 하나다. 자기 돈이 들어간 회사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다. 대신 전?현직 임직원의 낙하산 같은 소소한 실속을 챙기는 데는 게으름도 주저함도 없었다.
다음은 정부와 정치권이다.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이지만 진짜 주인은 누가 뭐래도 정부다.
이 세상 어떤 효율적 정부도 민간보다 기업을 잘 운영할 수는 없다. 외환위기 체제의 산물인 대우조선을 지금껏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한화그룹으로 매각이 무산된 지도 벌써 8년 가까이 지났다. 싸게 팔면 헐값시비, 외국에 팔면 국부유출여론이 두렵겠지만, 그래도 책임 있는 정부라면 어떻게든 재매각을 시도했어야 했다.
민영화엔 그토록 더딘 정부지만 젯밥은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산업은행이 작은 자리를 차지했다면, 정부와 정치권은 큰 자리를 챙겼다. CEO 임명 때마다 항상 줄대기 소문이 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외이사마저 정권의 몫이었는데 실제로 직전 사외이사진엔 새누리당 전직 국회의원이 2명이나 포진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4ㆍ13 총선에 출마, 한 사람은 금배지를 되찾았고 다른 한 명은 낙선 후 다른 공기업의 감사로 선임됐다.
대우조선 몰락의 직접적 책임자는 경영진이다. 태만한 대주주 밑에서 대우조선 경영진은 위임자가 아니라 주인처럼, 아니 황제처럼 행세했다. 정부 정치권 산업은행 등이 원하는 것(인사)만 차질 없이 제공하면, 나머지는 맘대로 할 수 있었다. CEO의 관심은 오로지 연임이었고, 이를 위해 실적이 몇 조원씩 부풀려졌다는 의혹도 있다. 공적 자금이 들어간 선박회사가 왜 골프장을 짓고 고급레스토랑을 운영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우조선에서 하청근로자로 일했던 지인이 있다. 당시 비슷한 처지의 근로자 중엔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에서 넘어 온 이들이 꽤 많았는데, 대부분 이유가‘대우가 현대 삼성보다 훨씬 편해서’였다고 한다. 그도 몇 달 일하면서 “참 헐렁한 회사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부?정치권-산업은행-대우조선 경영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느슨함, 책임의식의 실종은 아마도 작업현장까지 스며든 모양이다.
공기업을 통상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 하는데, 세상에 주인 없는 회사란 없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지 않았고, 경영자가 경영자 노릇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국민 세금으로 억지로 연명시킨 대우조선에 정부, 정치권, 산업은행 그리고 경영진까지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각자 원하는 부위별로 먹이감만 챙긴 형국이다. 거대한 공생 카르텔이 아닐 수 없다. 조선경기 호황 탓에 지금까지는 종업원, 협력업체, 지역주민들까지도 어느 정도는 나눠가질 수 있었지만 이젠 손실과 실패를 공유해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오너 체제인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은 어차피 알아서 할 것이다. 이번 산업구조조정의 핵심은 결국 대우조선이다. 이제 해야 일은 세가지다. 대우조선을 저 꼴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책임추궁이 첫째고, 거품을 확 빼서 몸집을 확실하게 줄이는 게 두 번째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유 불문하고 민영화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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