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 의혹으로 인해 발굴됐던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26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이날 네루다의 유해는 칠레 수도 산티아고로부터 120㎞ 떨어진 이슬라 네그라 묘소에 재매장됐다. 칠레 정부가 네루다의 타살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2013년 4월 유해를 묘소에서 발굴해낸 지 3년 만이다. 칠레 정부는 이날까지 이틀 동안 산티아고 전 국회의사당에 네루다의 유해를 안치해 시민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했다.
1945년 공산당에 입당한 후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 활동을 한 네루다는 세계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 받으며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민중운동을 이끌던 그는 1973년 친구였던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와 맞서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후 군부가 핍박의 강도를 높이자, 조국을 떠나려다 망명 하루 전 돌연 사망했다. 당시 69세였던 네루다는 전립선암을 치료 중이었다는 이유로 자연사로 처리됐지만 군부가 반체제 운동의 싹을 자르기 위해 독살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네루다는 1952년부터 이슬라 네그라에 별장을 짓고 살며 사후 묻히기를 원했지만 사망 후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 정권은 이 소원을 묵살하고 산티아고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이후 군부가 네루다를 암살했다는 소문이 들끓자 칠레 정부는 급기야 사후 40년 만인 2013년 네루다의 유해를 발굴해 조사에 착수했다. 그의 유해는 1993년 생전 소원대로 이슬라 네그라 묘소로 이장됐지만 20년 만에 재차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이다.
조사를 주도한 칠레 정부는 “타살 증거가 없다”고 잠정 발표했으나 의혹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스페인 연구팀이 타살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다량의 황색포도상구균 감염 흔적을 유해에서 찾아냈을 때도 칠레 정부는 “실험실에서 증식된 것”이라며 자연사 결론을 뒤집지 않았다. 결국 칠레 법원이 지난 2월 추가 조사를 위한 유해 일부를 남기고 나머지는 원래 묘소로 돌려보내도록 지시하면서 26일 네루다는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국제사회의 네루다 타살의혹 조사는 진행 중이다. 외신들은 “내달 중 국제 전문가들이 유해 유전자 분석한 결과를 발표할 것이다”고 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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