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흥반도 끝자락에 있는 외나로도는 예로부터 경관이 수려해 비단섬으로 불렸다. 신라 장보고가 바닷길을 장악했던 시절 중국 상인들이 하얀 해안절벽을 보며 오래된 비단을 걸어놓은 것 같다 해서 ‘나로(羅老)’라고 부른 게 지명으로 굳어졌다는 설도 있다. 섬을 두르고 있는 봉래산에는 일제 때 조성된 삼나무와 편백 나무 수만 그루가 빽빽해 원시림의 기운을 풍긴다. 지금도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발견되는 생태계의 보고다. 날씨가 좋으면 산 정상에서 제주도 한라산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쪽빛 남해바다의 탁 트인 전경이 절경이다.
▦ 봉래산 자락에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본산인 나로우주센터가 있다. 며칠 전 방문한 이곳은 한국형발사체를 개발하기 위한 엔진시험이 한창이었다. 2021년까지 우리가 만든 다목적 실용위성을 역시 우리 손으로 만든 한국형발사체에 실어 쏘아 올리는 게 목표다.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 기술을 빌린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지만 위성과 발사체, 발사대의 자립이 절실함을 깨달은 때문이다. 엔진의 불완전 연소를 해결하는 데만 1년여가 걸렸는데, 아직 75톤급 엔진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수백 번의 성능시험을 거쳐야 된다고 한다.
▦ 왜 우주산업을 육성해야 하는지는 긴 말이 필요 없다. 통신ㆍ환경ㆍ기상ㆍ자원탐사 등 쓰임새가 점점 확장되는 인공위성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기상위성 1기만으로 농업ㆍ항공 등의 피해를 사전 예방하는 효과만도 연 1조원에 달하고, 교통정체를 완화함으로써 얻는 연료절감 등의 경제 파급효과가 40조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무중력 상태에서의 신약개발 등 첨단 과학실험도 우주기술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국가안보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동향을 미국의 정찰위성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안보자립을 외칠 수는 없다. 일본도 위성으로 한반도를 손금 보듯 하는데 정작 우리는 까막눈에 가깝다.
▦ 발사체 개발은 첨단기술과 막대한 재원,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이전이 원천 봉쇄된 탓에 모든 것을 스스로 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실패가 잇따르게 마련이다. 일본도 자국산 로켓을 완성하고 인공위성 발사 시장에 참여하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우리 연구진은 아직도 실패의 두려움과 조속한 성과에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긴 호흡, 그리고 국민의 관심과 애정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