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양적완화 추진 의사도 밝혀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경제 현안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쏟아낸 것은 대기업 지정제도다. 박 대통령은 “현행 대기업 지정제도는 반드시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된다"며 “이 제도는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고 우리나라만 있는 제도”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지금은 경제규모도 달라지고 신산업 등을 많이 해서 굉장히 변화가 많은 시대인데 과거의 지정제도를 손도 안대고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먹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것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4월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대기업을 골라 지정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일명 대기업집단) 제도다. 여기에 지정되면 계열사간 상호출자, 채무보증, 소속 금융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제한 등 44개 규제가 적용되는데, 올 4월 카카오, 하림, 셀트리온 등 IT, 바이오 기업들이 새로 포함되면서 “신생 성장 기업들이 삼성ㆍ현대차 같은 자산 수백조원대 기업과 같은 규제를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논란이 일었다. 홍은택 카카오 수석부사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새로 적용받는 규제가 76개나 된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에 카카오 같은 기업에서 뭘 좀 해 보려고 하는데 대기업으로 지정돼 이것 저것 못하게 되면 누가 더 크려고 하겠느냐”고 강조했다.
자산 규모 기준을 적어도 10조원 이상으로는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재계는 당장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통령이 직접 개선 의지를 밝힌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거란 기대감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주무부처인 공정위도 당장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현재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인 ‘자산 5조원 이상’은 공정거래법 시행령에 규정돼 있어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정부 차원에서 변경이 가능한 사안이다. 공정위는 다만 “기준 변경 필요성은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고려해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지정 기준을 상향하되, 대기업집단 안에서도 차등 규제를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또 총선 과정에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국판 양적완화’에도 처음으로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그는 “강 위원장의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은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된다는 입장에 있다”며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추진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산업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산금채)과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기업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구조개선을 돕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한은이 살 수 있는 채권 범위를 넓히는 한은법 개정이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구도가 짜여지면서 동력이 식는 모습이었지만 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다시 힘을 받게 됐다.
박 대통령은 최근 다시 요구가 일고 있는 증세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인상 주장이 나온다’는 질문에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ankookilbo.com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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