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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ㆍ선택의 순간 ‘점’보다 사이코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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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ㆍ선택의 순간 ‘점’보다 사이코드라마”

입력
2016.04.2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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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재경험… 내면문제 밝혀 감정조절ㆍ인간관계 복원

인재ㆍ테러ㆍ자연재해 등 ‘외상후 스트레스’ 환자 큰 도움

약물의존 높은 정신질환자도… “수가반영 되면 대중화”

정신질환자 치료수단인 ‘사이코드라마(심리극)’가 일반인 마음치료 프로그램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위기와 선택의 순간에 처했을 때 사이코드라마에 참가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정신질환자 치료수단인 ‘사이코드라마(심리극)’가 일반인 마음치료 프로그램으로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위기와 선택의 순간에 처했을 때 사이코드라마에 참가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당신, 한번만 더 이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가만두지 않아. 그리고 아이에게 사과해.”사이코드라마(심리극)에 주인공으로 나선 중년 남성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 역을 맡은 관객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주인공은 이어 7살 된 어린 자신의 역을 담당한 관객에게는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너는 잘못이 없어. 그때 넌 겨우 7살이었어. 살기 위해 폭력에 맞서지 못한 너를 자책 하지마.”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사과를 받고 7살 어린 자신과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주인공은 어린 자신을 위로한다.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사이코드라마가 끝난 후 주인공인 중년 남성은 “평생 짓눌렀던 감정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정신질환 치료에 국한됐던 사이코드라마가 방송소재는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드라마 진행은 의외로 간단하다. 드라마 전제조건은 관객이다. 관객이 모이면 연출가(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또는 심리치료사)는 관객과 신체접촉이나 대화를 나누며 드라마가 시작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를 ‘관객과 노는 과정’이라고 한다. 드라마를 치료수단으로 쓰는 알코올중독치료전문병원 등에서는 관객(환자)이 드라마에 익숙해 있어 ‘노는 과정’이 짧지만 이 드라마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분위기를 40분 정도 조성한 뒤 드라마를 2~3시간 가량 진행한다.

사이코드라마의 핵심은 대본 없는 즉흥극이라는 점이다. 드라마 관객 중 한 명이 주인공을 맡아 그가 의도한 대로 드라마가 진행된다. 음악으로 말하면 라이브 공연인 셈이다. 연출가는 주인공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한다. 주인공이 말한 대로 상황을 연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의들은 “관객 스스로 드라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발성을 늘려야 주인공의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의들은 “인생에서 위기에 처했거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사이코드라마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상범 대전한일병원 알코올 치료센터 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거나, 과거 실수로 위기의 순간이나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좋지 않은 결정을 할 수 있다”면서 “드라마를 통해 왜곡된 과거를 교정하면 현명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알코올중독자다. 알코올중독자는 술 취하면 주사를 부리지만 깨고 나면 온순해진다. 술은 중독자에게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나 단점을 막아주는 절대적 수단이다. 알코올치료전문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중독자들은 술을 찾게 마련이다. 술을 마셔야만 자신의 트라우마를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센터장은 “중독자에게 술은 잠깐의 기쁨과 안도를 주지만 사이코드라마는 중독자가 술에 의존하는 이유를 밝혀내 근본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현실 적응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사이코드라마가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최대헌 한국드라마심리상담협회 회장은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우산을 들고 나가듯 사이코드라마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조명해 현실에 적응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문제점을 들춰내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것이다.

<사이코드라마 공연 병원>

<자료: 한국임상예술학회>

사이코드라마는 세월호 참사 같은 인재(人災), 자연재해, 테러 등에 노출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은 이들에게도 효과적이다. 전문의들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2년이 지났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치료를 거부하는 등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가진 생존자들과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이 사이코드라마를 통해 슬픔과 분노를 표출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평소 감정조절에 실패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드라마 참여를 권한다. 이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힘들어도 표현을 하지 못하고 참다가 감정이 폭발해 분노를 표출하는 이가 많다”면서 “자신이 왜 힘들고 서운한지 등을 드라마로 표현하면 카타르시스와 함께 힐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에 대한 인식개선도 필요하다고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강 센터장은 “사이코드라마를 분노를 표출하고, 울부짖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가 많다”면서 “드라마는 사람 내면에 천천히 접근해 왜곡된 과거를 바로잡는 정신치료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에 참여해도 처음부터 주인공 역을 맡지 말고 드라마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경험한 후 주인공 역에 도전하는 것이 좋다”면서 “부부도 궁합이 맞아야 하듯 자신과 잘 맞는 연출가를 만나야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몸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체득하기 때문에 효과가 강력하다”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불안하고 쫓기고 있다면 드라마에 참여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약물 의존성이 높은 정신질환자에게도 사이코드라마는 효과적인 치료수단이다. 의학발달로 치료효과가 뛰어난 약물이 나왔지만 약물 복용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전문의들은 “중증 환자가 아니라면 약물 복용보다 드라마를 통해 정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무대 공간 확보, 전문 인력 확보 등이 걸림돌이지만 5~10분 상담 후 약물처방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드라마를 치료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코드라마를 정신치료로 인정해 수가를 산정하면 이를 활용하는 의료기관도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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