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기와지붕과 나무창살, 반질반질한 마룻바닥. 한옥은 아파트가 점령한 도심에서 집으로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의 최고치를 선사한다. 그러나 단열, 동선, 보안 등 현대적 생활 양식을 미처 수용하지 못하는 문제점 때문에 한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도태할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슷한 시기에 들어선 두 채의 한옥이 있다. 하나는 새로 지었고, 하나는 고쳐 지었다. 문고리를 살짝 잡아 당겨 도심형 한옥살이의 이모저모에 대해 들어봤다.
새로 짓기-다락 있는 복층 한옥 ‘송인재’
김정훈ㆍ염재숙씨 부부가 한옥을 짓기로 한 건 한옥집에서 2년 간 전세로 살아본 후였다. 겉만 한옥이고 내부엔 알루미늄 창틀이 달린 집이 영 만족스럽지 않았던 김씨는 전통 요소를 충분히 살리되 공간 활용성이 높은 구조를 원했다. “전통 그대로의 한옥을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 한옥의 아름다움이 문에 있다고 보거든요. 창호나 문으로 한옥의 미를 살리고 생활은 현대적으로 할 수 있는 집을 생각했어요.”
공간이 넓지 않았다. 대지 66.10㎡(20평)에 건축면적 37.27㎡(11평). 여기에 침실과 옷방, 거실, 화장실, 마당을 꾸리고 부부의 활발한 취미생활에서 비롯된 온갖 물건들을 수납해야 했다. 설계를 맡은 김현석 준아키텍츠 소장은 천장을 30~40㎝ 가량 높인 뒤 다섯 평 남짓의 꽤 큰 다락방을 만들었다. “수평으로 30~40㎝ 늘어난 건 티도 안 나지만 수직으로 늘어나면 몸으로 느껴지는 차이가 굉장히 커요. 다락은 건축주가 꼭 원했던 건데 이왕이면 크게 해서 수납뿐 아니라 방으로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가뜩이나 까다로운 한옥 심의기준을 생각하면 다락을 만드는 건 모험이었다. 과거 심의과정에서 다락이 불허된 경우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근대 한옥에 다락이 적용된 사례들을 조사, 다락이 전통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대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구조라고 설득해 허가를 얻었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본 다락엔 사방 벽을 둘러 책과 술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좁은 집에서 일말의 프라이버시를 허용하는 공간으로, 남편 김씨가 종종 밤을 새며 영화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천장을 올리고 나니 비례가 문제였다. 위로 길쭉한 한옥이라니, 밖에서 볼 땐 몰라도 안에서 보면 아무래도 한옥의 맛이 살지 않았다. 건축가는 문의 너비와 높이를 조절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한옥은 벽 대신 미닫이문이 공간을 분할하는 게 특징이에요. 문의 높이를 낮추고 그 위에 가로로 광창이나 수납장을 달아서 시각적으로 길어 보이지 않게 조절했습니다.”
‘한옥의 미’라는 중책을 떠맡은 문은 특별히 무형문화재 장인에게 의뢰해서 제작했다. 거북살, 완자살, 빗살, 아자살 등 한옥 고유의 창틀 디자인을 이 집에서 거의 다 볼 수 있다. 창호값만 4,000만원. 김씨는 “문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단순히 멋있게 만드는 것 말고도 닫았을 때 꼭 물려야 하는데 이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만드신 분도 투덜투덜하시면서 작업하셨어요.”(웃음) 부부가 들인 공도 상당하다. 새 나무로 문을 짜면 고즈넉한 느낌이 안 날까 봐 고재를 구해다가 직접 사포로 니스를 벗기는 등 갖은 고생을 다 했다.
벽 대신 미닫이문으로 공간이 나뉘는 한옥의 특성상 문은 원래의 기능에 아트월 역할도 겸한다. 장인이 ‘한땀한땀’ 제작한 문살은 요즘 빌라에서 흔히 시공하는 조악한 아트월과는 비교할 수 없다.
채광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었다. 한옥 주변으로 끝도 없이 올라가는 건물들은 한옥 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주 원인 중 하나다. 거실과 다락에 각각 천창을 하나씩 내서 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비가 새서 골치를 앓았지만 몇 번의 수리 후 지금은 해결됐다고 한다.
현대식 건축을 많이 도입했다고는 해도 한옥살이는 쉽지 않다. 김씨의 뜻에 따라 집 안쪽에 조성한 작은 마당은 현재는 포기 상태. 여기를 타고 들어오는 냉기와 벌레가 만만치 않아 유리로 막아 실내화하기로 하고 지금 공사 중이다. “한옥이든 단독주택이든 집 주인이 부지런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아파트에만 살던 사람은 불편해서 못 살겠지만 그래도 자기 집 짓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다른 건축물이 줄 수 없는 감동을 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고쳐 쓰기-100년 한옥과 현대의 만남
한옥과 현대식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건 누하동에서 흔한 풍경이지만, 마당을 공유할 정도로 바싹 붙어 있는 건 흔치 않다. 양지우 움건축 소장이 이 희한한 집을 발견한 건 신혼집과 사무실로 같이 쓸 수 있는 건물을 구하면서다. 공사 전 사진을 보면 여기서 어떤 가능성을 봤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심하게 노후한 상태였다.
“나중에 목수분에게서 들었는데, 한옥에 쓰인 나무가 100년이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옆에 붙어 있던 2층집도 걷어 보니 일제 강점기 즈음에 지어진 목조주택에 콘크리트로 조금씩 증축한 흔적이 보이더군요.” 콘크리트 건물의 역사를 생각하면 조선 말기부터 전후까지의 다양한 시대가 녹아 있는 셈이다. 그러나 들어와 사는 것은 또 다른 얘기. 아내는 고개를 저었고, 결국 집은 한옥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몫으로 돌아갔다.
보통 한옥들이 현대식 생활에 맞게 조금씩 수리를 거친 것 달리 이 집은 마당을 통해 부엌으로 가야 했고 댓돌을 현관으로 사용하는 등 원래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건축가는 대청마루와 현관을 실내로 끌어들인 뒤 전면에 통창을 달아 마당이 시원하게 보이게 했다. 여름에 활짝 열면 사라진 대청마루의 기능을 대신할 법도 하다. 공간은 모두 터서 한가운데 부엌 겸 거실을 배치하고 ‘ㄱ’자 구조의 끄트머리에 있던 부엌은 침실로 바꿨다.
문제는 서까래와 대들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원래 주인이 쳤던 천장을 걷어내자 그 자리엔 그림처럼 멋있는 대들보와 서까래가 나왔다. “목수 분들이 아주 좋은 나무를 썼다고 하더라고요. 천장이 높으면 열 손실이 커지지만 다시 덮기 아까웠어요. 어떻게 하면 이걸 가리지 않을까 고민했죠.”
벽을 세울 수 없으니 일종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아일랜드 키친과 에어컨, 부엌장을 하나로 합친 구조물로, 키가 낮아 서까래를 가리지 않는다. 나무색과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해 벽은 모두 하얗게 칠했다. 수납 공간이 부족한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붙박이장도 여기저기 짜 넣었다. 문짝 수로 따지면 모두 열다섯 개. “가구가 많아지면 한옥이랑 안 어울릴 수 있어요. 그렇다고 전통 디자인의 가구만 들여놓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옷이나 작은 가전 같은 것들은 웬만하면 다 보이지 않도록 수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양옥집은 바닥이 흔들릴 정도로 낡아 아예 철거하고 새로 지었다. 여기는 움건축 사무실이 됐다. 양 소장은 목조주택에서 나온 나무와 콘크리트로 거칠게 발라 놓은 벽을 일부 남겨서 기념으로 삼았다. 시간이 아직도 여기 머물러 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