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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구마몬, 판다, 위안부 할머니

입력
2016.04.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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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와 구마몬/2016-04-24(한국일보)
판다와 구마몬/2016-04-24(한국일보)

최근 지진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는 구마몬이라는 지자체 캐릭터가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규모의 화산폭발 흔적이 남아있는 아소산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관광상품이 없어 고민하던 구마모토현 공무원들이 의기투합해 2011년 만들었다. 지명에 곰(熊ㆍ구마)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흑곰 이미지를 토대로 입과 눈 주위는 흰색을, 볼은 붉은 색으로 채색했는데, 앙증맞고 귀여운 인상이 강해 단번에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구마몬은 토마토, 딸기 등 먹거리에서 의류,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구마모토현에서 생산하는 대부분 제품에 캐릭터로 사용하고 있다. 구마모토현은 캐릭터 사용에 대한 라이선스비를 받아 수익을 올린다. 구마몬의 인기에 편승, 전국 각지에서 구마몬 캐릭터 사용을 위한 계약만 5,000건을 넘는다. 지난 해 구마몬 관련 상품 매출이 우리나라 돈으로 1조원을 넘는다고 하니 구마모토 지역의 굴뚝 없는 기업이나 다름없다. 특정 지자체가 만든 캐릭터가 이처럼 막대한 부가가치를 불러온 적이 없는 터라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앞다퉈 구마몬 캐릭터의 성공사례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구마모토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효자 노릇을 하던 구마몬이 요즘 지진 피해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전도사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만화 ‘내일의 조(한국제목 허리케인 조)’의 작가 지바 데쓰야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구마몬을 활용, 지진 피해자 격려 메시지를 제작했다. 이들의 응원 메시지는 졸지에 폐허가 된 삶 속에서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고 있다. 구마모토현도 이런 사정을 듣고 피해지역 모금활동 등에 한해 구마몬 캐릭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구마몬을 이용한 다양한 메시지 중 중국의 상징인 판다가 상처입은 구마몬을 위로하기 위해 죽순을 건네주는 그림 한 장이 최근 큰 화제를 모았다. 중국의 네티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한 이 그림은 우리나라 못지 않게 많은 외교적 갈등을 지니고 있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마저 갈등적 요인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에 양국 국민들의 공감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구마모토 지진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반응은 이상하리만큼 싸늘하다. 불과 5년전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한국 사회가 펼쳤던 온정의 손길은 찾기 어렵고, 냉소에 가득 찬 댓글들이 온라인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구마모토 지진을 두고 더 많은 희생자들이 나오길 바라는 듯한 저주성 글까지 쏟아내고 있다. 구마모토 지진의 영향으로 최근 활동을 재개한 아소산 분화에 쾌재를 부르는 글을 보노라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진 피해자 돕기에 나선 것을 두고도 부정적인 시각이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본에 대한 국내 네티즌의 나쁜 감정은 아베 신조 정부의 불통 오만 외교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아베 정부측 인사들은 지난 해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담화를 두고 내용의 실천을 수행하기도 전에 “더 이상의 위안부 논의는 없다”는 이른바 ‘불가역’ 논리를 앞세워 회담의 가치를 무력화하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일본 우익세력의 행태가 아무리 밉다고 한들, 이런 감정을 위안부 할머니와 지진 피해 주민에게 이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는 일본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라는 할머니들의 주장은 일본 정부와 지진 피해자를 동격시하는 일부 시선에 대한 점잖은 충고일게다. 숱한 고초를 겪은 할머니들의 선의야 말로 판다의 위로보다도 수십 배 수백 배 값어치를 지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창만전국부장 cm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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