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수사가 제조업체 책임 규명으로 치달으며 과연 살균제 제조업체에 살인죄 적용이 가능할지 주목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70~80%를 야기했지만 최근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등에 대해 ‘살인 기업’이라는 비난이 확산되고 있지만 실정법상 살인죄 적용은 별개의 문제다. 살인죄가 적용되려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예견가능성과 살인의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 즉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때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미필적 고의를 갖고 제품을 만들어 팔았을 때 살인죄 처벌이 가능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서울중앙지검 이철희 형사2부장)은 먼저 살균제 원료와 피해자들의 폐 손상 간 인과관계가 있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옥시가 이 같은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거나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이 아니라고 반박하기 위해 별도의 실험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옥시는 불리한 결과가 도출된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보고서는 빠뜨리고, 제출한 보고서의 경우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끔 실험조건 설정에 관여하거나(호서대 보고서) 유리한 내용만 제출(서울대 보고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살균제 원료를 SK케미칼 등으로부터 납품 받으면서 제품의 유해성 등을 기재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폐기하고, 소비자들이 살균제 부작용을 호소한 홈페이지 글들을 삭제하는 등의 증거 인멸은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더라도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이윤 추구를 위해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이 소비자를 죽이려고 독성 물질을 가공ㆍ판매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기 때문. 일부에서 거론되는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도 적용이 어렵다. 형법상 부작위는 위험이 생기는 것을 막을 의무가 있거나 위험 발생 원인을 제공한 자가 적극적으로 이를 막지 않은 것을 말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위험에 빠진 승객을 버리고 도망한 이준석 선장에게 적용됐다. 하지만 옥시는 부작위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유해성을 알면서도 제품을 만들어 파는 작위(作爲)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업무상 과실치사 및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처벌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옥시가 독성 물질을 다루면서 충분한 주의 의무를 기울이지 않은 점만 입증되면 처벌이 가능한데,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업무상 과실치사 및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 적용이 가능해 보인다”고 한 부장판사는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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