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총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20대 총선 결과를 보면 당선자 중 법조인이 49명으로 다른 어느 직역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입법기관으로서 국회의 역할을 고려하면 법률전문가들이 국회로 진출하는 것은 일단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회 그리고 정치의 과정을 돌이켜보건대, 그같이 높은 비율로 정치에 진출한 법조인들이 입법과정에서 법치주의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거나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정치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다.
물론 사법시험 제도하의 매우 제한된 숫자의 인원을 뽑는 시험에 뛰어난 인재들이 집중적으로 몰리다 보니 그 과정을 통해 배출된 법률가들 중에서는 탁월한 정치적 리더십을 갖춘 분들이 일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개는 개인적인 역량의 차원이었고 시스템을 통한 지도자의 양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법률가 양성체계는 뛰어난 정치적 지도자를 시스템적으로 배출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말 주체적인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제 식민지배의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을 통해 수입된 대륙법계의 다른 국가 법체계가 우리 법체계의 기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국 초기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법학 및 법률가의 주된 역할은 문제되는 법률적인 쟁점들이 그 법률이 수입된 원래 나라에서, 혹은 일본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 법률의 해석을 둘러싸고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어 왔는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발전이 있기는 했지만, 사법시험제도와 사법연수원을 근간으로 하는 법률가 양성 시스템 하에서 최고의 덕목은 주어진 문제에 대해 관련되는 사실적, 법률적 쟁점들을 최대한 빠뜨리지 않고 검토하는 꼼꼼함이었다. 사회적으로도 법률가 혹은 사법부에게 우리 공동체의 중요한 현안에 관한 의사결정이 맡겨지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법학 및 법률가의 역할에 대한 지금까지의 이러한 상황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매우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과 사회적 분화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비교법(比較法)적 검토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고유의 법률적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었다. 나아가 종래 정치의 영역에서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던 공동체의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들이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점차 사법부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 그리고 그에 따른 ‘사법의 정치화’의 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상황에서 법률가들에게 기대되는 덕목들도 예전과 같을 수 없다. 점점 더 법률가들은 예전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문제에 대해 꼼꼼하게 필요한 비교법적인 혹은 학설상의 검토만을 하는 것으로 충분히 역할을 다했다고 인정받을 수 없는 환경이 되고 있다. 문제상황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고 종래의 틀에서 찾을 수 없었던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이 요구될 수도 있고, 법률적 문제의 배경이 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요구될 수도 있다. 법률가들이 진출하는 사회적 영역도 매우 다변화될 것이다.
곧 20대 국회가 출범하면 법률가 출신 국회의원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법률가양성제도를 포함한 사법제도개선에 관한 논의가 다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법률가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이 무엇인지, 그 역할기대에 부응하는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해 법학 교육은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관해 중심 잡히고 건설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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