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을 보러 독립문공원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사람들이 한 방향을 응시하며 멈춰 있었다. 휴일이면 소그룹 문화탐방 팀들을 동네에서 보곤 하지만, 그들은 꽤 큰 무리를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바라보던 곳은 빌라의 주차장 안쪽. 그곳에서 등산모를 쓴 중년의 한 남자가 걸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모두들 남자가 있던 곳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들은 뚫린 주차장과 잇닿아 있는 축대를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다. 축대 위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집이 빌라 2층과 붙다시피 서 있었다. 나는 방금 그 집 앞을 지나쳐 디긋자로 길을 꺾은 뒤 그곳에서 멈췄던 것. 지나다니며 무심코 봤던 축대는 놀랍게도 서울성곽이었다. 우리 동네에 복원되지 않은 서울성곽이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을 때마다 흔적 정도만 남았을 거라 짐작했다. 사람들은 성곽 위에다 담장을 올렸고, 방과 거실 등을 들여 살고 있었다. 조선 후기에 다시 쌓거나 보수한 성곽의 돌은 크고 반듯하지만, 초기에 쌓은 성곽의 돌은 작고 올망졸망하다. 축대를 이룬 돌들이 자잘하고 모양에 통일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곳의 성곽은 일찍 축조되었을 터. 돌아올 때는, 갈 때 봤던 문화탐방객들처럼 나도 축대의 돌을 하나하나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돌들은 긴 세월에 마모되었음에도 까슬까슬했다. 손끝에서 인간의 큰 역사가 아닌 한 많은 개개인의 삶이 점자처럼 만져졌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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