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동아시아팀장 故 나현씨
2013년 귀국 후 뇌출혈로 숨져
아프리카 개발에 헌신 유지 이어
유족 등 학교 건축 400명에 혜택
“딸내미가 살아 있을 때 못 다 이룬 꿈을 천국에서 이루네요.”
윤영순(70)씨는 지난 6일 한국에서 1만㎞ 떨어진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한 빈민가에 있었다. 꼭 3년 전 딸 나현(당시 46세)씨가 세상을 등지기 불과 사흘 전까지 빈민가 구석구석 누비며 아이들을 보듬던 에티오피아의 어느 지역과 똑 닮은 곳이다. 이날 나이로비 단도라에서는 ‘세인트가브리엘 나현스쿨’ 착공식이 열렸다. 나현스쿨은 평소 힘없고 가난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보며 가슴 아파했던 딸이 그들을 위해 마련한 마지막 선물이었다. 윤씨는 22일 “첫 삽을 뜨면서 수없이 현이의 이름을 되뇌었다”며 “척박한 땅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싶다던 딸이 생전 이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기뻐했을지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나씨는 1995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입사하면서 개발도상국 원조 정책을 연구해 왔다. 그가 검은 대륙으로 눈을 돌린 건 97년. 이후 케냐와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을 오가며 오롯이 연구와 봉사에 매진했다. 하지만 KOICA 동아시아팀장으로 일하던 2013년 4월 20일 에티오피아에서 귀국한 뒤 갑자기 찾아온 뇌출혈은 끝내 나씨의 육신을 앗아갔다.
나씨는 아프리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았다.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미래를 밝히는 것은 교육에 있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아프리카 출신 연수생들이 한국을 찾으면 직접 음식을 대접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는 건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동료 김식현 KOICA 인사운영팀 과장은 “가정이 있는데도 현지에서 교육 사업이 시작되면 직원들 대신 손수 방문할 정도로 아프리카는 나 팀장님의 제2의 고향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생전 그런 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1년에 8개월 정도를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아프리카에 머물면서 힘겨워 하는 나씨를 보면 안타까울 뿐이었다. 딸은 그럴 때마다 말 없이 아프리카에서 찍어 온 아이들 사진을 손에 꼭 쥐어줬다고 한다. 윤씨는 “험한 일 좀 그만 하라는 타박에도 현이는 입버릇처럼 ‘아직 할 일이 많다’며 오히려 나를 설득했다”면서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쓰러질 듯한 건물 사이에서도 해맑게 웃던 아이들의 눈동자를 못 잊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나현스쿨은 이처럼 아프리카 개발에 평생을 헌신하고 떠난 그의 분신과 다름없다. 유가족과 굿네이버스, KOICA가 단순 기부가 아닌 학교 건축을 택한 것도 나씨의 오랜 소망이 실현되기를 바라서다. 올해 말이면 4~14세의 단도라 지역 학생 400명(11학급)이 번듯하게 지어진 학교 건물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된다. 현재 나이로비의 학령기 아동 규모는 55만5,000명에 달하지만 공립학교에서 실제 수용 중인 아이들은 19만3,053명(37%)에 불과하다.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유명 인사가 아닌 민간인의 이름을 딴 학교가 아프리카에 세워지는 것은 드문 일”이라며 “모든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기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지만 나씨의 숭고한 뜻을 받드는 작은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나현스쿨이 완공되는 대로 나씨의 남편, 두 딸과 함께 다시 케냐를 찾을 예정이다. 윤씨는 “딸의 평생 꿈이 이젠 내 꿈이 됐다”며 “단순히 학교를 지어주는 일에 그치지 않고 급식, 교육 시스템 등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도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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