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ㆍ13 총선에서 정치권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사상 처음 국회 밖 독립기구로 출범한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참여한 일부 위원들이 “이번에도 게리맨더링을 피하기 어려웠다”며 협상 과정을 뒤늦게 토로했다.
선거구 획정위는 지난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나누는 게리멘더링을 없애자는 뜻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의 독립기구로 재출범했다. 그러나 4ㆍ13 총선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여야 추천으로 임명된 위원들이 정치권의 대리전을 치러 “독립기구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법정 기한을 넘긴 2월 28일에서야 선거구 획정안을 확정한 후 그간 입을 굳게 닫았던 위원들은 선거 후 기자와 만나 “청와대와 정치권이 사실상 대리인을 내세워 획정위 결정에 지나치게 개입했다”고 털어놓았다.
A획정위원은 선거구가 2개에서 3개로 늘어난 서울 강서구 사례를 꺼내며 “한 위원이 서울 강서에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 창고가 있어 그 지역 사정을 잘 안다며 모양새가 이상한 안을 제시했다”며 “상당수 위원들이 공항대로를 기준으로 나누면 화곡본동부터 8동까지 한 선거구로 묶을 수 있어 동의하는 분위기였지만 특정 국회의원에게 유리하도록 엉뚱한 기준을 들이대고 우기는 바람에 협상이 꼬였다”고 말했다. 실제 화곡동은 갑(화곡 1ㆍ2ㆍ3ㆍ8동)과 병(화곡 본ㆍ4ㆍ6 동) 두 선거구로 쪼개졌다.
또 획정위는 경북 안동ㆍ예천, 영주ㆍ봉화, 상주ㆍ문경을 묶어 선거구로 획정하려 했지만 뒤늦게 새누리당 추천 한 획정위원이 각 지역 국회의원들이 합의하지도 않은 내용을 “합의한 당론”이라 주장하며 안동, 예천ㆍ문경ㆍ영주, 청송ㆍ의성ㆍ군위ㆍ상주로 묶는 새 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다른 여당 추천 획정위원이 반발하고 안동, 예천 주민들까지 상경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B위원은 “한참 이견을 좁히던 1월 초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민생이 먼저라며 쟁점 법안 처리와 연계한다고 목소리를 냈다”며 “그러자 여당 측 일부 위원들이 이미 합의한 내용까지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해 협상이 뒷걸음 쳤다”고 말했다. C위원은 “대법원은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2대 1 이하로 조정하라고 했지만 일부 위원들은 ‘인구 편차 2.3대 1’ 안을 버젓이 들고 와 이대로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B위원은 “선거 1년 6개월 전부터 획정위가 가동되는데, 상시 운영 체제로 바꾸는 게 옳다”며 “지역 현지 답사도 충분히 해 정보를 제대로 모아야 여야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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