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46)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비주류’다.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들이 국가대표 선수부터 감독까지 주름잡았던 시대를 기준으로 하면 분명 그렇다. 그는 대구공고-영남대 출신이다. 대구공고 시절 모교에 전국대회 첫 우승을 안겼고 수도권 명문대의 러브 콜을 받았지만 친구 2명을 함께 받아준 영남대를 택했다고 한다. 한국 축구에서 연ㆍ고대 출신이 아닌 사람이 올림픽 본선 사령탑을 잡은 것도 신 감독이 처음이다. 그는 A매치 출전 경력이 23경기 3골에 불과하다.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태극마크를 못 달았다. 거스 히딩크(70) 감독은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시즌(2001년) K리그 최우수선수(MVP)였던 신 감독을 외면했다.
하지만 초라한 국가대표 경력 때문에 의기소침하기엔 그의 프로 경력이 너무 화려하다. 성남의 K리그 두 차례 3연패(1993~95, 2001~03) 주역이고 신인왕(1992)-득점왕(1996)-MVP(1995, 2001)에 모두 오른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다. 뛰어난 실력과 카리스마로 7년 넘게 완장을 찼다. 구하기 힘든 흑산도산 홍어를 철마다 잡아 집에 선수들을 초대해 회식하며 분위기를 다졌다. 그는 당대 최고 연봉 선수였다. 성남 경기가 끝난 날이면 고급 선글라스를 끼고 팬들에게 사인을 했다. 명품 옷을 입고 비싼 차를 타는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프로는 팬들 앞에서 멋있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는 성남 감독일 때도 선수들에게 “축구 잘 해서 돈 많이 벌어 잘 차려 입고 좋은 차를 타라”는 말을 자주 했다.
감독으로 데뷔해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9년 감독대행 시절 정규리그와 FA컵 준우승을 차지했고 정식 감독 부임 첫 해인 2010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아시아를 제패한 뒤 “난 난놈이다”고 당차게 말해 큰 화제를 모았다. 선수들에게 훈련 외 시간에 철저히 자유를 주고 스승이 아닌 선배처럼 다가가 스스럼없이 의사 소통한 ‘맏형 리더십’의 원조다.
신 감독은 올 8월 ‘위대한 도전’을 앞두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100여 일 남았다. 한국은 런던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두 대회 연속 메달을 노린다. 한국은 8월 5일 오전 5시 피지, 8일 오전 4시 독일(이상 사우바도르 아레나 폰치 노바), 11일 오전 4시 멕시코(브라질리아 마네 가린샤 스타디움 )와 차례로 맞붙는다.
월드컵 무대는 한 번도 못 밟았지만 올림픽은 신 감독에게 친숙하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표로 출전해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뛰었다. 올림픽팀 사령탑을 맡게 된 과정도 특별했다. 그는 국가대표 코치로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감독을 보좌하고 있었다. 작년 2월 이광종(52) 전 올림픽팀 감독이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자 대한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신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 ‘1인2역’을 맡게 했다. 사실 국가대표 코치만 하는 게 더 쉽고 편한 길일 수 있었다. 4년 전 런던에서 동메달을 딴 뒤라 후임 사령탑은 부담이 크다. 더구나 이번 올림픽의 주축 연령인 1993~94년생은 특출난 스타플레이어가 없다고 해서 ‘골짜기 세대’란 오명을 들었다. 이들의 바로 위가 1989~90년생인 구자철(27ㆍ아우크스부르크)과 기성용(27ㆍ스완지시티) 등이 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이고 아래에는 1997~1998년생인 백승호(19)ㆍ이승우(18ㆍ이상 바르셀로나 후베닐A) 등 특급 유망주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기존의 풀리그 방식에서 토너먼트로 바뀌어 본선 행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도박이라 해도 제대로 한 번 부딪혀보고 싶다”고 수락 배경을 설명했다.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는 고비마다 번뜩이는 전술로 팀을 결승으로 이끌며 세계 최초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서 ‘숙적’ 일본에 2-0으로 앞서다가 2-3으로 역전패해 다소 빛을 잃었지만 신 감독은 “좋은 공부가 됐다. 쓴 약을 먹었다”고 자평 했다. 한국에서 올림픽에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나간 사람은 신 감독을 포함해 정국진(1948 선수, 1964 감독) 김정남(1964 선수, 1988 감독) 김삼락(1964 선수, 1992 감독) 등 4명뿐이다.
신 감독의 지도 아래 ‘골짜기 세대’라 불리던 선수 중 황희찬(20ㆍ잘츠부르크), 문창진(23ㆍ포항), 김동준(22ㆍ성남) 등 보석들이 배출됐다. 손흥민(24ㆍ토트넘)이 와일드카드(23세 초과)로 합류하고 나머지 두 자리는 홍정호(27ㆍ아우크스부르크)와 장현수(25ㆍ광저우 R&F)가 유력하다. 이 정도 멤버와 조직력이면 메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 14일 리우 올림픽 조 추첨을 마치고 경기장 현장 등을 답사한 뒤 베이스캠프로 사용할 후보지까지 둘러보고 귀국했다.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청사진을 공개할 예정이다. 닻을 올린 신태용호가 리우로 출항할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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