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와 공정경제론 힘 얻어
여야 3당 진지한 정책경쟁 물꼬 터
국가발전 해법 찾기에 도움 기대
4ㆍ13 총선의 바람직한 결과 중 하나는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정당 간 정책 경쟁의 질이 전에 비해 훨씬 높아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론’과 안철수의 ‘공정경제론’이 정책 논의의 장에 본격 진입했다는 뜻에서다.
선거 전만 해도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공정경제론’은 첨예한 현실을 모르는 애송이 정치인의 막연한 이상론으로 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쥔 원내 제3당으로 우뚝 서게 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이제 새누리당이든 더민주당이든, 국민의당이 표방하는 공정경제의 원칙이 각종 경제현안에서 어떤 입장으로 구체화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종인 더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경제민주화론’도 그렇다. 총선 직전 새누리당은 김종인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경제관료 출신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을 선대위원장으로 내세웠다. 강 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경제민주화론을 “일종의 포퓰리즘”이라고 한마디로 매도했다. 그러나 더민주당이 원내 제1당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젠 누구도 경제민주화론을 포퓰리즘이라거나, 고지식한 원칙론으로 일축하지 못하게 됐다.
물론 세상은 단숨에 바뀌지 않는다.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민생과 무관한 정파 간의 권력싸움에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 민주 대 반(反)민주의 오랜 대립구도나 고질적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도 시효가 다했음을 표로써 선언했다. 그럼에도 더민주당 정청래 의원 같은 사람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비리로 돈 먹고 감옥 간 사람” 운운하며 김종인 대표에 대한 정파적 공격에 나섰고, 천정배 국민의 당 공동대표는 뜬금없이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청문회’를 들고 나와 의식의 후진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구태 정치인이 야당에만 남은 게 아니다. “김무성 죽여버려”라는 막말로 우리 정치의 질을 한낱 길거리 주먹 패거리 수준으로 전락시킨 친박(親朴) 핵심 윤상현 의원만 해도 총선에서 살아 남았다. 그런 인물들이 붕당 짓거리를 이어갈 여지도 다분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찌꺼기가 남아 있다 해도, 정치가 국가 발전과 민생을 위한 진지한 경쟁 쪽으로 선회하는 흐름은 뚜렷하다. 최근 더민주당과 국민의 당이 기업 구조조정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정부ㆍ여당 역시 야당과 협의의 틀을 적극 모색하는 상황이 그런 흐름을 확인해 준다.
사실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론은 용어에서 비롯된 편견을 제거하고 보면, 마땅히 수용할 만한 합리적 주장이 많다. 당장 노조 문제에 대한 시각만 해도 그렇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야당과 달리, 민주노총 등과의 무조건적 연대에 반대한다. 오히려 대기업노조가 기업과 결탁해 기득권 철옹성을 유지하면서 대다수 중소ㆍ하청 기업 노동자 등과 소득 및 근로조건의 양극화를 빚고 있는 걸 문제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기존 노조 체제 개혁은 물론, 비정규직이나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리해고 등의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노동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이기권 노동부 장관이 주장하고 있는 노동개혁 방향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철수 공동대표가 공정경제론을 통해 가장 강조하는 대목 중 하나는 수많은 중소ㆍ벤처기업들의 성장을 막는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막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법을 강화해 중소ㆍ벤처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갑질’을 없애고,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정책의 무게중심도 중소ㆍ벤처기업이 좀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옮기자는 것이다. 현 정부의 중소ㆍ벤처기업 지원책에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얘기다.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신(新)성장 동력을 찾아내며, 양극화를 해소하는 완전한 방안은 결코 어느 한 쪽에 있지 않다. 그걸 감안해 국민은 지난 총선에서 여야 3당이 좀 더 구체적 정책 경쟁을 통해 최선의 방안을 찾아 나가도록 경쟁구도를 만들어줬다. 새 구도 속에서 김종인과 안철수 두 사람의 경제론이 국가발전의 정답을 찾는 유용한 변수로 작동할 수 있기 바란다.
/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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