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까지 자발적인 구조조정의 길을 택했다. 수출입 무역 강국의 동맥으로 한국 산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온 해운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과 10년도 안돼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양대 국적 선사의 몰락은 급변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어떤 기업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조양호 회장 왜 백기 들었나
한진해운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동생 조수호 회장이 2006년 별세한 뒤 2009년 지주회사 체재로 전환했다. 당시는 해운업 호황 시기라 고가에 선박을 대량 구매하는 등 확장에 열중했다. 그러나 이후 세계 해운업 침체로 2013년에는 부채비율이 1,400%까지 치솟았다.
2014년 대한항공 자금이 수혈되며 경영권은 한진그룹으로 다시 넘어왔지만 해운업 시황은 오히려 더 악화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영업이익 369억원을 달성하며 겨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유동성 위기를 벗어날 순 없었다. 금융권 등에서 끌어온 차입금은 지난해 말 기준 5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진해운은 2013년 이후 고(高) 용선료 선박 반납, 노선 합리화, 수익성 낮은 노선 철수 등 뼈를 깎는 자구책을 실행했다. 1조7,000억원 규모의 전용선 사업부문을 매각했고 4,000억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통해 2조5,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돈이 될만한 자산이 더 이상 남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흑자 전까지는 연봉을 받지 않겠다”며 대한항공 등을 통해 그룹 차원에서 한진해운 정상화를 추진해온 조 회장도 점차 한계에 봉착했다. 항공시장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마저 유동성 위기에 몰린다면 그룹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수도 있다. 독이 온 몸으로 퍼지기 전에 손목을 잘라내야 하는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특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이미 현대상선 경영권을 포기한데다 4ㆍ13 총선 이후 기업 구조조정 목소리가 응집되는 분위기도 조 회장으로서는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그룹 전체가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안타깝다”며 “국가적인 지원 속에 경쟁력을 키워가는 독일이나 중국 선사처럼 우리 해운업도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해운업 앞으로 어떻게 되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은 개별 기업을 넘어 해운업 전체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있다. 한국산업은행 등 금융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체결한 현대상선처럼 한진해운 역시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를 포함한 모든 채권자의 공평한 채무재조정이 자율협약의 전제가 된다. 두 선사가 해외 선주들과의 용선료 재조정에 성공하고, 채무조정이 원활하게 마무리되면 경영진은 바뀌더라도 사명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법정관리를 피하기 어렵다. 현대상선을 향해 “용선료 협상이 안되면 법정관리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한 유일호 경제부총리의 최근 경고에서 한진해운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강제 구조조정은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양대 국적 선사 논란’과 직결된다. 주채권은행인산업은행이 전적으로 칼자루를 쥐게 되면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두 선사의 합병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금융업계에서도 “전시 같은 비상시엔 국익을 위해 양대 선사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논리가 우세하다.
이상윤 인하대 아태물류학과 교수는 “당장 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으니 규모의 경제를 위해 두 선사를 합병하는 안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항로와 영업 방식이 유사, 둘을 합친다고 해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