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 지시 무시하고 과속 드러나
탑승자 27명 중 기관사 1명 사망
대부분 뒤쪽 객차에 타 피해 적어
지난달 이어 또… 안전불감증 여전
22일 전남 여수에서 27명이 탑승한 무궁화호가 탈선, 기관사와 승객 등 9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기관사가 관제 지시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달린 것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드러나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22일 오전 3시 40분쯤 전남 여수시 율촌면 월산리 율촌역 부근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해 기관사 양모씨가 숨지고 부기관사 정모씨와 승객 등 8명이 부상했다.
코레일에 따르면 전날 오후 10시 45분쯤 서울 용산역을 출발해 여수엑스포역으로 운행 중이던 무궁화호 1517호가 전라선 율촌역 인근에서 궤도를 이탈했다. 순식간에 발생한 사고로 맨 앞 기관차가 선로 밖으로 튕겨나가 선로 옆 기둥을 잇따라 들이받고 나뒹굴었다. 또 객차 2량이 45도로 기운 채 선로 밖으로 밀려나는 등 전체 9량 가운데 기관차와 객차 4량이 탈선했다. 사고 현장은 뒤집힌 열차와 튕겨나간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됐으며 승객들은 갑작스러운 충격과 굉음에 놀랐다.
사고 당시 열차에는 기관사 2명, 승무원 3명, 승객 22명 등 총 27명이 탑승해 있었다. 사고 열차는 관광지인 여수엑스포장이 종점이어서 평소 주말 관광객의 이용이 많지만 평일 밤차였던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승객이 많은 시간에 사고가 발생했다면 초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며 “사고 발생 시간이 새벽이라 승객이 많지 않은데다, 대다수 승객이 탈선하지 않은 뒤쪽 객차에 타고 있어 사고 규모에 비해 인명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전했다. 뒤쪽 객차가 앞으로 밀려 앞 객차에 부딪히며 충격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조사결과 사고는 용산역에서 순천역까지 정상적으로 하행선 운행하다가 보수공사 때문에 순천역에서 상행선으로 선로가 바뀌고 다시 율촌역에서 하행선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당시 순천~성산역 구간에서 선로 기반을 다지기 위한 궤도 자갈 교환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상행선은 정상 운행됐지만 하행선은 통제 중이었다. 열차는 관제실의 유도에 따라 운행속도를 시속 35㎞ 이하로 줄여 선로를 변경해야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시속 127㎞으로 운행하다가 탈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사고 열차에서 생존한 부기관사와 관제사를 상대로 조사하는 한편, 블랙박스 역할을 하는 열차운행정보장치와 무전기록을 분석, 정확한 사고 경위를 가려내기로 했다. 또 사고 당시 순천역에서부터 부기관사가 운전을 했다는 진술에 따라 실제 운전 여부와 선로 변경 지점에 대한 인수인계 여부 등 사실 관계도 조사 중이다.
이날 사고로 순천~여수엑스포역 간 열차 운행은 전면 중단됐으며, 23일 첫 열차(KTX 702열차ㆍ여수엑스포역 오전 5시 출발)부터 정상 운행될 전망이다.
지난 달 11일 경부선 신탄진역 부근에서 화물열차 탈선사고가 난 데 이어 한달 여만에 또 다시 탈선 사고가 발생하자 코레일 조직의 기강해이가 불러온 인재라는 지적도 있다. 전임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지난 달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 현재 최고경영자 공백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잇따른 사고에 대한 책임을 공감한다”며 “안전 관리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해명했다.
여수=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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