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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구마모토 지진과 일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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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구마모토 지진과 일본사회

입력
2016.04.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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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지난 16일 새벽 규모7.3의 2차 강진이 발생한 직후 주차장으로 피신한 한 여성이 울음을 터뜨리며 전화를 걸고 있다. 구마모토=AP연합뉴스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지난 16일 새벽 규모7.3의 2차 강진이 발생한 직후 주차장으로 피신한 한 여성이 울음을 터뜨리며 전화를 걸고 있다. 구마모토=AP연합뉴스

4일간의 구마모토(熊本)현 출장으로 기자의 일본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인이라면 평생 한번도 느끼지 않고 지나칠 지진의 극한을 몸서리치도록 체험한 것 같다. 도쿄(東京)에서 간혹 접한 단발성 지진과는 차원이 달랐다. 30분에서 한 시간 간격으로 찾아오는 여진이 주범이다. 하루에 100차례 넘게 반복됐다. 아비규환의 상황이 순간이 아닌 지금 바로의 현실이었다.

숙소 8층 객실에 짐을 풀어놓자마자 건물이 무너질 듯 흔들려 1층으로 대피했다. 전기와 수도공급이 끊긴데다 먹을 것이라곤 편의점에서 운좋게 구한 식빵이 전부였다. 탈진상태에서 잠시 바닥에 누우면 등으로부터 지축의 성난 움직임이 고스란히 몸에 전달됐다. 아소대교 붕괴 현장 진입시 겪은 여진은 야외에서 세상이 흔들리는 희한한 경험이었다. 몇 초간 숨이 멎을 듯 조여오는 공포는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현장에서 지켜본 일본인의 시민의식은 남달랐다. 크게 분노하지도 낙담하지도 않고 다소 체념한듯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구마모토시에서 후쿠오카(福岡)로 탈출하는 수백m의 자동차행렬이 대표적이다. 차선을 잘못 든 취재진의 차량이 끼어들기를 해야 할 난감한 상황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누구 하나 경적소리를 울리지 않았고 앞쪽에 있던 흰색자동차가 친절히 공간을 터주었다. 통제요원 한 명 없이 광대한 교통상황이 군말없이 유지됐다. 한국이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아찔하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긴급 대피소에서 오니기리(주먹밥) 1개를 받기 위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인파중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굶주렸지만 책임자 나오라고 호통치는 사람도, 새치기를 하거나 이를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울분을 참지 못하는 한국인의 기질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본인의 침착한 대응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자신보다 사회전체를 중시하는 집단의식,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메이와쿠(迷惑)’ 문화 같은 전통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재해를 당해 모두가 어려운데 나만 잘살려고 하다가는 결국 공동체 일원으로 버티기 힘들다는 인식이 당연한 듯 했다. 일탈했다가는 무서운 ‘따돌림’을 감수해야 하는 집단적 압박도 결정적일 것이다.

구마모토 현지에 남아있는 수많은 이재민들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도쿄로 돌아온 기자의 관심은 향후 일본사회의 분위기다.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은 보수화된다. 위기극복을 위해 일치단결만을 강조하는 분위기 속에 내셔널리즘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서서히 커질 것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중의원해산 및 중ㆍ참의원 동시선거 카드는 일단 물건너 갈 가능성이 생겼다. 재난극복을 최우선으로 국민신뢰를 얻는데 주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난대응 능력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한다. 2011년 도호쿠대지진이란 사상 초유의 악재가 터지면서 54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당 정권은 3년 반 만에 무너졌다. 그러면서 등장한 게 아베 정권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4일 밤 9시26분 규모6.5의 강진 발생 26분만에 TV앞에 설 만큼 빠른 행보를 과시하고 있다.

구마모토 지진은 아베 정권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까. 대형재난은 ‘강한 일본’을 희구하는 대중심리와 결합해 우경화된 현정권의 입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극우야당 오사카유신회의 대표가 “지진이 좋은 타이밍에 발생했다”는 망언을 한 것만봐도 짐작할 수 있다. 최초 구상과 달라지더라도 끊임없이 궤도를 수정하며 전진하는 아베 총리의 추진력으로 볼 때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 빗나갈 수도 있다. 동시선거를 통해 개헌세력을 단숨에 확대한다는 구상에 제동이 걸렸지만 아베 총리가 개헌 필요성을 주장하며 내세우던 ‘긴급사태 조항’(재난극복 위해 국민기본권 제한) 신설이 더 주목받을 가능성이 생겨났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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