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 베이징 뒷골목을 걷다
조관희 글ㆍ사진
청아출판사 발행ㆍ304쪽ㆍ1만6,000원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其實地上本沒有路, 走的人多了, 也便成了路)”(루쉰의 ‘고향’)
루쉰은 중국 문학이 이전에 걷지 않은 길을 걸었고,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문학의 길은 그러했을진대, 삶의 길은 어떠했을까? ‘후통, 베이징 뒷골목을 걷다’는 제국이 해체되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던 1900년대 초 베이징에서 ‘길’을 만들어낸 이들의 삶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우선 책에서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오는 ‘후통’이란 베이징의 구 성내를 중심으로 산재한 좁은 골목길을 일컫는 말이다. 저자는 “베이징의 역사는 곧 후통의 역사다. 그곳에서 캉유웨이가 상소문을 썼고, 량치차오가 관료로서 자신의 뜻을 펼쳤으며, 루쉰은 참담한 현실에 고뇌의 깊이를 더했다.”고 덧붙이며 역사의 한 챕터로써 후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후통은 베이징을 찾은 이방인들에게도 기회의 공간이었다. 신채호와 주요섭 등이 이곳에서 머물며 주권 회복을 위해 분투했고, 미국인 저널리스트 에드거 스노는 마오쩌둥과 홍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집필하기도 했다. 역사는 광장의 한가운데에서도 펼쳐지지만, 이런 뒷골목 어느 음습한 흙길 위에서도 탄생했던 것이다.
이처럼 후통에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간이 촘촘히 쌓아 올려진 거리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인물로 돌아보는 근대 초기 중국의 역사서이자 동시에 가이드북으로써의 역할도 겸한다. 특히 저자가 직접 찍은 4만여 장의 사진과 중국 역사에 대한 풍부한 이해로 재구성한 이들의 발자취는 1900년대 초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유명 관광지와 독특한 맛집도 좋지만, 이 책을 끼고 뒷골목 허름한 비석에 얽힌 비화에 대해 떠올리며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을 느껴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후통의 역사를 지속시키는 것은 녹록지 않다. 최근 후통은 도시 재개발의 논리에 따라 하나씩 철거되고 있는 중이다. 많은 후퉁들이 퇴락하거나 아예 없어졌고, 후퉁이 사라진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 단지나 상점가가 들어섰다. 보존과 개발의 딜레마에서, 어떤 것을 ‘기억할 만한 역사’로 남길 것인지의 문제는 베이징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오래된 도심일수록 역사의 퇴적 속도는 도시의 개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책의 말미 “베이징의 역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가뭇없이 스러져 가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속에 아스라이 회한만 남기고 있을 뿐”이라는 말에 저자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지난 17일에 서울 서촌 ‘이상의 집’에서 이상 79주기 행사가 열렸다. 이상의 집은 이상이 3세부터 23세까지 지낸 집터 일부를 2009년부터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운영을 맡아 지역 주민과 예술가의 교류 장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이상의 집에서 십여 분 걷다 보면 윤동주의 하숙집 터가 나온다. 어제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변해가는 서울도 베이징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한소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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