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세에 첫 작곡, 장르 넘나들어
음반 1억장에 그래미상 7개
집에서 발견… 사인 안 밝혀져
미국 대중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스러졌다. 록과 리듬앤블루스(R&B), 펑크 등을 종횡무진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음악인 프린스가 숨졌다. 세계의 팬들은 그의 명곡 ‘퍼플 레인’(Purple Rain)을 인용해 ‘자주색 비가 내렸다’며 슬퍼했다.
22일 미국 언론들은 프린스가 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미네소타주 페이슬리 파크 자택 엘리베이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향년 58세.
프린스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지난주 독감에 걸려 응급실에 실려간 뒤 퇴원해 집에서 휴양 중이었다. 숨지기 5일 전 자택에서 파티를 열며 지인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였던 터라 프린스의 죽음은 급작스럽기만 하다.
프린스의 이름 앞에는 가수나 대중음악가 대신 예술가 또는 개척자, 전복자라는 수식이 종종 붙었다. 어느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장르를 주유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세계를 만들어 낸 그의 남다른 삶 때문이었다.
프린스는 1958년 6월 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났다. 음악가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폭포수와도 같은 음악적 세례를 받았다. 그의 본명은 프린스 로저스 넬슨. 프린스 로저스는 그의 아버지가 무대에서 선 스스로에게 붙였던 이름이다.
프린스의 천재적인 면모는 첫 작곡을 한 7세 때부터 발휘됐다. 프린스는 10대 때 스스로 견본테이프를 만들어 대형 음반사 워너뮤직에 보낸 뒤 전속 계약을 맺었다. 1979년 21세에 첫 앨범 ‘프린스’를 내며 데뷔를 한 그는 이후 커다란 별로 성장하며 20세기 후반의 대중음악사를 밝게 빛냈다. 40개의 앨범을 발표해 1억장의 음반을 팔았고, 7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특히 1984년 발표한 앨범 ‘퍼플 레인’은 1,300만장이 팔리며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웬 도브스 크라이’와 ‘렛츠 고 크레이지’ ‘키스’ ‘크림’ 등도 그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프린스는 무대와 스튜디오 밖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음반 판매 수익 배분을 둘러싼 워너뮤직과의 법정다툼 등을 통해 대중음악인의 권익 보호에 나섰다. 그는 1995년 그래미상 시상식에 ‘노예’(Slave)라는 글씨를 얼굴에 새기고 등장해 탐욕스러운 대형 음반사의 횡포를 고발했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프린스라는 이름 대신 알 수 없는 기호로 자신을 표기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이익을 얻는 음반사에 대한 투쟁의 한 방편이었다. 언론은 ‘예전 프린스로 알려진 음악가’로 그를 소개해야만 했다. 프린스는 음악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곡들이 스트리밍 방식으로 전송되는 것에도 반대했다.
프린스는 생전 “강한 정신은 규칙을 초월한다”는 말을 남겼다. 하루 3시간씩 자며 온갖 인습과 편견을 넘어 음악계에서 자신만의 기호로 우뚝 선 작은 거인(그의 키는 157㎝였다)다운 발언이다. 하지만 그의 강한 정신도 죽음이라는 생명의 숙명을 초월하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중음악에 분명한 영향을 주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인은 드물다”며 “우리 시대 가장 재능 있고 생산력 있는 음악인 중 하나인 프린스는 그 모든 일을 해냈다”고 프린스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수 마돈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프린스는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는 진정한 선지자”라는 글을 올려 추모했고, 영국 가수 보이 조지는 트위터에 “최악의 날”이라며 슬퍼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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