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지진 성금 온라인서 갑론을박 벌어져
“살인범이 상 당하면 부조하나”
변화 없는 日에 반감이 내부로
“할머니들 앙갚음 바라는 것 아냐
시민들 스스로 인식전환해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겪은 할머니들이 일본 구마모토(熊本) 강진 피해자들을 돕겠다며 성금을 기부한 일을 두고 온ㆍ오프 공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진정한 관용의 가치를 몸소 보여준 데 대한 칭송이 대부분이지만, 일각에선 ‘일본에 온건한 태도를 보일 거면 위안부 사과를 요구하지도 말라’는 식의 억지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21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0), 길원옥(87) 할머니는 일본 구마모토현 등을 휩쓴 강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각각 100만원과 30만원을 기부했다. 김 할머니는 20일 수요집회에서 기부 의사를 밝히며 “강진 피해자들이 아파하고 있는데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일본에 재일교포들도 많고 우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줬던 사람들도 여럿 있다”며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모금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특히 “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도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라고 시민들의 모금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두 할머니는 정대협 측에 먼저 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대협은 곧 관련 단체들과 일본 지진 피해자 지원 모금활동을 벌여 여기서 거둔 기부금과 할머니들이 전달한 130만원을 함께 일본에 전달할 계획이다. 앞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정대협과 함께 모금 활동을 펼쳐 1,500만원 상당의 성금과 구호 물품 등을 일본에 보냈다.
평생의 한(恨)을 넘어선 할머니들의 선의에 많은 이들은 찬사를 보냈다. 주부 김진영(52)씨는 “관용이 점차 사라져가는 시대에 선행을 베푼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며 “이러한 마음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 큰 울림을 주길 바란다”고 했다. 네티즌 김**도 “창과 칼로 다가온 일본에게 오히려 따뜻한 마음으로 다독이려는 모습은 이 시대를 살리는 아름다운 정신”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일방적인 위안부 협상 타결안을 내놓은 한일 양국 정부에 강하게 반발해왔던 피해자 할머니들이지만 일본 지원에 먼저 나서자고 촉구한 대목도 높이 평가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진심을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론도 적잖다. 대학생 최모(24ㆍ여)씨는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이 기부금을 전달하면서 일본에 굽히는 모양새가 나지 않겠느냐”며 “일본이 도움을 받고도 고마워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정모(27)씨도 “일본인이 지지해 뽑힌 사람들이 일본 정치인들이고, 이들이 할머니들을 매춘부 취급하는데 그런 일본 사람들을 돕자는 말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더욱 과격한 반응들이 오갔다. 네티즌 tyui****는 “할머니들을 짓밟은 사람들 중에는 일반인들이 있었고 그 후손들이 지진으로 고통 받은 것”이라며 “이들을 도운 할머니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강간범, 살인범이 상을 당했다 한들 부조하러 가는 것이 옳은 행동이냐”(후**)는 반응을 내놓은 네티즌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달라지지 않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과거사 반성 부족 행태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가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한 뒤에도 독도,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서 일본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반감이 할머니들의 기부도 비판적으로 보게 만들었다”며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한 할머니들의 성금 전달 사실만으로도 일본 시민들에게 미칠 영향력이 대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해자인 일본 군인, 당시 일본 정부,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현재 일본 정부의 책임과 일본 시민이 가져야 하는 윤리적 차원의 책임이 다르다는 것을 할머니들은 알고 있다”며 “할머니들이 주장해 온 것들이 특정 개인에 대한 분노와 앙갚음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안다면 우리들 역시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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