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전통적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집권 이후 소원해진 관계 회복에 주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미국 언론들조차 양국 정상회담 이후 “합의보다는 이견을 노출했다”고 논평해 불신의 시대는 오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 리야드에 도착해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을 만난 뒤 페르시아만 걸프협력이사회(GCC) 6개국(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정상회의에 참석, 테러와 시리아ㆍ예멘 내전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백악관은 정상회담 뒤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양국 간의 역사적인 우정과 뿌리 깊은 전략적 파트너십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그러나 양국이 합의한 내용보다는 이란과 예멘, 시리아 문제 등 그간 이견을 보여온 중동 지역의 주요 의제를 논의했다는 데에 방점을 찍어 여전한 '균열'을 시사했다. 백악관은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살만 국왕에게 인권 문제와 관련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CNN은 이번 회담의 성격이 해결책에 대한 합의보다는 논의의 시작에 가깝다는 미국 정부 당국자의 언급을 전하면서 "양국은 이견이 있다는 데에 동의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결과는 오바마 대통령이 도착하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사우디에 도착했을 당시 공항에는 살만 국왕이 아닌 리야드 주지사가 영접을 나왔다. 주요 정상 방문 때마다 대부분 살만 국왕이나 모하마드 빈나예프 제1왕위계승자가 공항 영접을 나간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 GCC 정상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살만 국왕이 직접 영접을 나갔다. 사우디 국영방송도 GCC 정상들의 도착 장면은 생중계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중계하지 않아 ‘푸대접’ 논란까지 일고 있다.
양국간 파열음은 2011년 아랍의 봄(민주화 시위)부터 비롯됐다. 당시 미국은 사우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사실상 묵인했다. 이집트는 사우디와 같은 수니파 국가다. 시리아 내전에서도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 알 아사드 정권 축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사우디의 오랜 앙숙이자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에 대한 미국의 우호 정책도 사우디의 불만을 높였다. 지난해 7월 미국은 이란과 핵합의를 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대 이란 경제 제재를 해제했다. 이란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특히 최근 9ㆍ11 테러 희생자들이 외국 정부를 고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미국 의회가 추진하면서 사우디의 불편한 심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간 미국 내에서는 9ㆍ11 테러가 사우디 왕가ㆍ정부 관계자의 자금과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우디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보유중인 미국 자산(약 852조원 규모)을 한꺼번에 매각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이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는 미국이 이란을 다시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키기를 원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양국간 대화를 원하고 있다”며 “양국 지도부의 시각이 너무 크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아랍뉴스도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중 사우디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4번째지만 별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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