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구대표팀/사진=대한배구협회 제공.
최근 대한배구협회 홈페이지에는 '2016년 시니어남자대표팀감독 초빙'이라는 제목의 공지가 올라왔다. '초빙(招聘)'은 사전적 정의로 '예를 갖추어 불러 맞아들임'이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예(禮)'는 찾아 볼 수 없다.
지도자 임기는 '선발시부터 2016년 국제대회 종료시까지'로 명시돼 있다. 이번에 새롭게 선임되는 남자대표팀 감독은 오는 6월17일 국제배구연맹(FIVB)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를 시작으로 9월19일부터 열리는 아시아배구연맹(AVC)컵까지 지휘봉을 잡게 된다. 대회 종료일인 9월25일은 사실상 이번 대표팀 감독의 임기 만료일이다. 배구협회가 5개월 단기 '알바' 감독을 뽑는 셈이다. 이는 신임 감독에게도, 국내남자배구에도 '예'가 아니다.
물론 배구협회도 사정이 있다. 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은 지난 15일 박기원(65) 대표팀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졸지에 대표팀 수장을 잃은 배구협회는 당일 부랴부랴 감독 공모글을 올렸지만, 적임자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표팀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박기원 감독은 당초 대표팀 감독을 병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으나 이후 다시 구단의 일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대표팀 겸직에 대한 뜻은 있었지만, 코치진 재편, 자유계약선수(FA) 시장,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등 현실적으로 구단에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은 것을 인지하고 구단 일에 전념하기로 하셨다. 감독님과 충분히 논의된 사항이다"고 말했다.
대표팀 감독 공모 기간은 22일까지다. 배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21일 오후까지 몇 명의 지원자가 있었다"며 "우선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의거해 응모자를 평가하고 선발할 것이다. 이후 상임이사회에서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대표팀의 옷에 딱 맞는 감독이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남자배구대표팀 감독직은 현재로선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다. 남자배구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이번 리우까지 4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등 국제대회에서 크게 고전하고 있다. FIVB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를 준비하기에는 훈련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본지의 확인 결과 이번에 뽑는 대표팀 감독은 전임제가 아니기 때문에 활동 기간에 해당하는 급여만 받는다. 5개월 남짓 기간인 데다, 연봉제로 받는 것이 아니어서 금전적으로도 만족스럽지 못한 대우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젊은 지도자인 김세진(42) OK저축은행 감독이나 최태웅(40) 현대캐피탈 감독은 '최소 5년 이상 지도경력 보유자'라는 자격요건에 미달돼 후보조차 되지 못했다. 프로구단 감독들을 제외하면 적임자가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누가 뽑히든 훈련은 속성 과외식으로 단기간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대표팀 감독직의 위상과 가치가 땅으로 떨어진 모양새다. 모두가 태극마크를 주저하는 어이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단기 알바 감독을 뽑는 배구협회의 공모 글도 황당하지만, 그것을 올리게 만든 국내 배구계의 현실도 씁쓸할 따름이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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