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30ㆍ미네소타)는 넥센에서 뛰던 2014년 8월 목동구장 전광판을 넘기는 초대형 홈런을 터뜨린 뒤 비거리가 145m로 발표되자 다음날 기자에게 살짝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불과 2개월 전 전광판 상단을 맞고 넘어가는 홈런 때도 똑 같은 145m였기 때문이다.
21일 현재 4개 홈런의 평균 비거리 129.85m의 괴력을 뽐내고 있는 박병호의 파워는 한국에서는 제대로 검증 받지 못했다. KBO리그의 홈런 비거리 측정 방식은 전통적인 ‘목측(目測)’이다. 시즌 전 각 구장에 측량 기사들을 투입, 외야 스탠드 수십 곳에 낙구 지점을 표시한 뒤 홈플레이트와의 거리를 잰다. 각 구장 기록원실에는 홈런 비거리 산정 기준이 되는 구장 도면이 비치돼 있다. 그러나‘눈대중’ 측정이기 때문에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 5m 단위로 기록하며 반올림도 적용해 가령 122m 정도 돼 보이면 120m로, 123m라면 125m로 발표한다. 실제로는 1m 차이지만 공식 기록으로는 5m가 왔다 갔다 하는 셈이다. 방송 중계 시스템은 첨단 장비와 과학을 도입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홈런 비거리 측정은 프로 초창기부터 아날로그 방식 그대로다. KBO 공인 최장거리 홈런 기록은 1982년 백인천(MBC), 1997년 양준혁(삼성), 2000년 김동주(두산), 2007년 이대호(롯데) 등 네 명이 보유한 150m다. 이 중 김동주와 이대호는 장외홈런이었는데 역시 정확한 측정은 불가, ‘장외홈런=150m’로 인식된다.
지난해 박병호가 목동 kt전에서 친 시즌 45호 홈런은 외야 그물망을 넘겼으나 KBO는 135m로 발표했다. 그런데 군사용 레이더 시스템이 추적한 이 홈런은 무려 159m를 날아갔다. 김제원 KBO 기록위원장은 21일 “미국이나 일본처럼 세밀하고 정확한 비거리 측정 필요성은 모두 공감한다”면서 “트랙맨(레이더 추적장치로 타구 속도와 비거리, 각도 등을 잴 수 있다)을 대여하는 방안 등을 연구 중이지만 트랙맨의 정확성도 KBO 차원에서 검토해보지 않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답답하던 국내 팬들은 이제 박병호의 홈런 비거리를 m단위로 소수점 이하 두 자릿수까지 알 수 있게 됐다. 메이저리그는 1피트(0.3m) 단위까지 비거리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모든 구장에 특별한 추적 장치를 설치해 다양한 기록들을 얻고 있다. 투수의 투구 동작을 면밀히 분석하고 구속을 측정하는 것은 물론 타자의 타구속도와 비거리, 체공시간, 홈런 타구가 지면에 떨어질 때까지의 비거리 추정, 주자의 속도, 리드 폭, 가속도, 수비수의 속도, 송구 스피드 등 경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측정하는 ‘스탯캐스트(Statcast)’라는 이름의 시스템이다. 여기에 ESPN 등 방송사와 매체별로도 측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박병호의 홈런 비거리가 매체마다 약간의 차이가 나는 이유다.
‘목동 홈런왕’이라는 시기와 질투를 들어야 했던 박병호로서는 제대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무대가 펼쳐진 셈이다. 메이저리그 최장기록은 1953년 뉴욕 양키스의 미키 맨틀이 친 172m 홈런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대를 감안하면 정확한지는 의문이다. 일본에서는 2005년 알렉스 카브레라(당시 세이부)가 비거리 180m짜리 홈런을 친 바 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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