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혁명을 이끈 중앙문혁소조(中央文革少組)의 조원으로 마지막 생존자였던 치번위(戚本禹)가 별세했다. 향년 85세. 홍콩 일간 명보(明報)는 21일 치번위가 상하이(上海)에서 위암 치료를 받던 중 상태가 악화되면서 20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상하이 출신으로 중학생 때 중국 공산당 지하당에 가입하면서 마오쩌둥(毛澤東)과 인연을 맺은 치번위는 1950년 마오 전 주석의 부인 장칭(江靑)이 운영하는 사무실의 기밀 담당 비서로 활동했다. 이후 문화혁명이 본격화하던 1966년 중앙문혁소조 조원으로 선임된 치번위는 공산당 중앙판공청 비서국 부국장 등 주요직책을 두루 지냈다. 그는 당 이론지 구시(求是)의 전신인 홍기(紅旗) 부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문화혁명의 4인방으로 꼽히는 야요원위안(姚文元)과 함께 역사극 ‘해서파관(海瑞罷官)’비판을 주도하면서 문화혁명을 확대해 ‘난야요베이치(南姚北戚)’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치번위는 하지만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1968년 반혁명 선전활동 등의 혐의로 체포돼 베이징(北京) 친청(秦城) 교도소에서 18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치번위는 2014년 명보와 인터뷰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으로 도입된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중국특색사회주의’에 대해 “이는 자본주의일 뿐 사회주의가 아니다”고 비판하는 등 평생 좌파의 시각을 유지해왔다.
양홍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