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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사과는 기교 없이

입력
2016.04.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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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대문 위에 얹힌 선라이트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 우편배달부가 대문 위에 우편물을 올려놓고 있었다. 곧 나가 봐야지 하다가 깜빡 잊고 있을 때 다시 선라이트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뭔가 좀 이상했다. 잠시 뒤 눈앞에서 우편물이 사라졌다. 기다리던 우편물이라 급히 뛰쳐나갔다. 중국집 배달부가 그것을 가지고 막 골목을 꺾고 있었다. 몇 해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를 불러 세워 우편물을 돌려받았다. 밖으로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 표정에는 분명 그 이상의 힐책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는 사과는커녕 말간 눈으로 나를 쳐다봤는데, 분명 ‘골목에 이게 떨어져 있어서 주웠을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처럼 분실된 우편물이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불쾌했고, 같은 일이 계속해서 생기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어 나는 제대로 사과를 받고 싶었다.“다시는 우리 집 우편물을 가져가지 마세요!” 작심하고 말하는 내게 그는 억울하다는 표정만 짓다 사라졌다. 그는 사과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늘 사과해야 하는 순간에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던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도 사과라곤 하지 않았고, 딱 한 번 상황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한 적이 있었다. 기교를 부렸던 그의 사과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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