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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ICC 회부는 압박용… 기소 땐 평화통일 어려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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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ICC 회부는 압박용… 기소 땐 평화통일 어려울 수도”

입력
2016.04.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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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넘어 15년간 근무한 배경

선례 없는 판결 내는 과정 인상적

재판 마무리 안 돼 1년 단위 연장

국제사회의 김정은 ICC 회부 요구

한국 검찰의 독자 수사 어려워져

국제 기준에 맞게 증거 모아둬야

유고 대통령 독살설 근거 없어

혈압약 무용화하는 약성분 검출

재판기일 미루려는 의도였을 듯

한국 사법부의 신뢰 높이려면

법률의 신뢰 ‘법적 논증’에서 와

판결문 자세히 써줘 납득시켜야

권오곤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이 20일 본보 16층 회의실에서 유고 전범 재판 과정과 소회를 설명하고 있다. 권 전 부소장은 ‘발칸 학살자’ 카라지치 사건의 재판장으로 일하는 등 15년의 ICTY 재판관 근무를 마친 뒤 지난달 귀국했다. 왕태석 기자
권오곤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이 20일 본보 16층 회의실에서 유고 전범 재판 과정과 소회를 설명하고 있다. 권 전 부소장은 ‘발칸 학살자’ 카라지치 사건의 재판장으로 일하는 등 15년의 ICTY 재판관 근무를 마친 뒤 지난달 귀국했다. 왕태석 기자

“전쟁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정신적 재산적 피해를 입는 것에 견준다면 국제재판소 운영비용은 결코 비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 출신 국제재판관인 권오곤(63)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이 지난달 15년의 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다.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국제재판소의 존재 가치를 이렇게 설명했다. 권 전 부소장은 지난 3월 세르비아계 정치지도자로 대량 학살 책임이 있는 라도반 카라지치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한 재판으로 기나긴 네덜란드 헤이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자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대해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언젠가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당 국가가 수사 및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고(unable) 수사를 꺼릴 때(unwilling) 비로소 국제재판에 회부하는 원칙을 감안하면 기소시점과 기소주체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단 국제재판소에 넘겨지면 통일 이후 한국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북한의 반발로 협의를 통한 남북 평화통일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전 부소장은 “국제사회가 ICC 회부를 언급하면 북한이 반인도 범죄를 그만 두도록 압박하는 용도는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국제적 기준에 맞게 증거를 차곡차곡 모아두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_15년 간 국제재판관으로 근무한 소회는.

“인류와 국제사회를 위해서 매일 재판하는 게 큰 보람이었다. 나치 전범을 처단하기 위해 설립됐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 이후 처음으로 1993년 ICTY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설립됐다. 어느 한 국가의 법체계를 고수하지 않고 대륙법과 영미법의 절충안을 찾아 적용한다. 여느 법정처럼 참고해 살펴볼 선례가 없어 새로운 판결을 해야 했다. 각국에서 다른 사법체계를 가진 재판관들이 모여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_ICTY 재판관 임기는 4년인데 15년 가까이 근무하게 된 배경은.

“2001년 ICTY 3기 재판관으로 합류해 2009년까지 1차례 연임했다. 당초 2010년까지 모든 전범 재판을 마무리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임기를 1년 단위로 연장했다. 각국에서 재판관을 추천 받아 선출하는 절차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해마다 한 번씩 유엔 안보리 결의문에 이름이 올랐다.”

_1992~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인종 청소’를 지휘한 세르비아계 정치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재판의 재판장을 맡았다. 심리과정은.

“‘발칸의 학살자’로 불린 카라지치에 대한 재판은 역사적, 국제법적 의의가 있다. 카라지치는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 전쟁범죄, 반인도 범죄 등 11개 혐의를 받았다. 1995년 기소했지만 카라지치가 도망 다니다 2008년에야 잡혔다. 2010년 4월 첫 증인신문을 시작으로 2014년 10월까지 심리했다. 재판만 498차례 열렸다. 공소장과 각종 신청서 등 소송기록 9만쪽, 증거목록 18만쪽 등 관련 서류가 모두 합해 33만쪽에 달한다. 법정에 출석한 증인이 600명이다. 검찰은 종신형을 구형했고 카라지치는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아서 법리적 쟁점보다 정치적 주장의 변론이 주를 이뤄 기일이 더 길어졌다. 판결문을 쓰는 데 1년 5개월 걸렸고, 판결문을 읽는 데만도 1시간40분이 걸렸다.”

_재판 도중 전 유고 전 대통령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사망했다. ‘독살설’ 도 있었는데.

“부검해서 보고서까지 나왔지만 독살설은 사실이 아니다. 밀로셰비치는 좌심실 비대증이 있었다. 혈압이 높았다. 교도관 앞에서 정기적으로 혈압약을 먹는데도 갑자기 혈압이 높아지곤 했다. 혈액검사 결과 밀로셰비치에게서 한센병이나 결핵 환자가 먹는 강한 아스피린 계통의 약성분이 검출됐다. 혈압약을 무용화시키는 약이었다. 그는 자신이 먹은 적이 없으므로 누군가 독살하려 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밀로셰비치가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을 더 길게 하려다가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권오곤(앞줄 왼쪽 두 번째)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이 201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재판소에서 ICTY 인턴 과정 수료자 및 동료 재판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오곤 전 부소장 제공
권오곤(앞줄 왼쪽 두 번째)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이 201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재판소에서 ICTY 인턴 과정 수료자 및 동료 재판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권오곤 전 부소장 제공

_국제재판소와 우리나라 사법문화가 달라 겪은 에피소드가 있는지.

“실제로 한국 법정 풍경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배석판사가 재판 도중 당사자에게 함부로 물어보지 않는다. 재판관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우리나라에서 하던 것처럼 법정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더니 며칠 뒤 언론에 ‘재판관이 아무 말을 안 했다’고 기사가 났더라. 다른 재판관들에게 물어보니 법률적 쟁점이 논의될 때는 심리과정에 개입해서 당사자에게 물어본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 익힌 절차법적 관행 대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절차를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_급여 수준은 어떤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바로 아래 직급인 유엔 사무차장 수준이다. 국가마다 약간 차이가 있는데 월 2만 달러 정도다. 집과 자동차, 보험료 등 모든 체재비를 포함한 것이다.”

_국제사회에서 한국 사법부의 위상은 어떤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이 연임했고 ICTY 재판관과 부소장을 지낸 저를 포함해 정창호 ICC 재판관, 박선기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 재판관까지 3개 국제형사재판소에 4명의 재판관이 머물다 보니 한국 사법부의 수준을 높게 평가한다.”

_앞으로 한국 법조인의 국제재판소 진출 전망은.

“2009년 재임 중 우리나라 법원행정처와 조율해 ICTY에서 판사 펠로우 근무제도를 운영했다. 우리나라 법원에서 판사를 보내 1년씩 국제재판소 연구관으로 근무하도록 했는데 현재까지 7명이 다녀갔다. 반드시 재판관이 아니더라도 재판소에 근무하는 걸 목표로 한다면 기회는 많다.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잘하면 물론 좋을 것이다. 저는 국제사회가 나를 여기에 불러준 것은 내가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동양에서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임했다.”

_국제재판소가 위치한 네덜란드에서 판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평등주의가 정착된 나라다. 여왕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마트에서 장을 본다. 장관이라고 특별한 대우를 받으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런 대우를 받지도 않는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판사라서 달리 취급 받은 적이 없다. 구내식당이나 주차장에도 판사 자리가 따로 없다.”

_한국에서 사법부 신뢰를 높이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법원의 신뢰는 판사들이 월화수목금금금 판결문을 쓴다고 쌓이는 게 아니다. 법률의 신뢰는 ‘법적 논증(legal reasoning)’에서 온다. 토론을 통해 이런 결론이 나왔다고 보여주고 당사자가 수긍할 수 있어야 사법신뢰가 쌓인다. 그래서 판결문에 이유를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판사들이 너무 바쁘다는 것이다. 업무과중으로 그나마 유ㆍ무죄 여부에는 신경을 쓰지만 국민들의 관심사인 보석, 구속 등에 대해서는 한 두 줄에 그친다. 이런 부분까지 아주 자세히 써줘서 납득하게 해주면 신뢰는 자연히 올라갈 것이다.”

_다른 국제기구 재판관을 권유 받았다는데 거절한 이유가 있나. 앞으로의 계획은.

“여러 가지 생각 중이다. 국제형사법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도 염두에 뒀었는데 정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국제재판관으로 20년을 근무해보고 싶었지만 아내가 긴 외국생활에 힘들어 했다. 하지만 아예 가능성을 닫은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이 나오지 못해 정부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국가 위상을 높이는 차원에서 떨어질 각오를 하고라도 나가볼 의향은 있다.”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권오곤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

1953년 충북 청주 출생. 1976년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이듬해 사법시험 수석 합격, 사법연수원 9기 수석 수료로 ‘수석 3관왕’으로 불린다.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대통령비서실 법제연구관과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헌법재판소 연구부장 등을 거쳤다. 대구고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2001년 2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관 후보로 추천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ICTY 재판관이 됐다. 2008년에는 부소장으로 선출됐다. 지난달 31일 15년에 걸친 재판관의 소임을 마치고 퇴임했다. 부소장으로 재임 중이던 2009년에는 김용담 전 대법관의 후임 후보자 4명 중 1명으로 추천되기도 했다. 2009년 올해의 법조인상, 2011년 영산법률문화상, 2013년 한국법률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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