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를 방문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만났다. 두 나라는 오랜 우방국이었지만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사우디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며 틈새가 벌어진 터라 썩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특히 사우디가 유가 폭락으로 경제위기 상황에 몰린데다 미국이 사우디와 경쟁국인 이란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 양국관계가 자칫 탈선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사우디에 각을 세우며 양국 관계는 미묘하게 틀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사월간지 ‘디 애틀랜틱’ 과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대 이란 강경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사우디와 이란이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우디의 반발을 불렀다. 수니파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역내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가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할 리도 만무하다. 18일 석유수출국회의(OPEC)에서도 사우디는 “이란이 참여하지 않은 석유생산 제한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해 합의 무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가 안정보다 이란과의 라이벌 관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자세를 우선시한 셈이다.
이란 이슈 외에 미 의회에서 논의 중인 9ㆍ11 테러 진상조사 관련 법안도 쟁점 현안이다. 문제의 법안은 미국 내 소송에서 외국정부의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법을 테러범죄에서는 예외로 삼는 법안이라 사우디 정부도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석유 가격 폭락과 함께 국제위상이 추락하는 있는 사우디 입장에서는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가 달가울 리 없다. 미국의 중동정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그동안 막대한 군비를 동원해 중동 무장세력을 제압해 온 사우디로서는 1991년 이후 25년 만에 국제금융 채무국이 되는 상황을 대미관계의 연장선에서 재해석할 수도 있다. 집권 막바지인 오바마 대통령과 살만 국왕이 양국관계를 개선할 의지도 크지 않아 보인다.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번 회담으로 미국과 사우디 사이에 전보다 훨씬 멀어진 외교관계가 수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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