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불황으로 지역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웠다지만 거제의 봄은 여전히 눈부시다. 1인당 국민소득 전국 최고를 자랑하는 거제에선 ‘촌티’를 찾아보기 어렵다. 해변마을마다 예쁜 펜션 한 두 채씩은 들어섰고, 웬만한 시골마을에서도 편의점 찾기가 어렵지 않다. 거제도는 한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타원형으로 펑퍼짐한 제주와 달리 거제의 해안선은 치마주름처럼 들쭉날쭉하다. 섬을 에두르는 14번 국도와 1018번 지방도에서 벗어나 한 발짝 더 들어가면 거제가 좀 더 아름다워진다. 일운면 공곶이마을에서 최남단 남부면 홍포마을까지 해안 드라이브로 거제의 봄을 만났다.
▦40년 세월이 켜켜이…공곶이마을 수선화 꽃밭
일운면 와현리에서 육지가 바다로 툭 튀어나온 곳, 예구마을로 방향을 틀었다. 목적지는 공곶이마을.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집은 단 한 채, 찻길도 예구마을에서 끝난다. 20분을 걸어야 나오는 공곶이는 이 조그만 반도에서도 꽁무니에 해당한다.
공곶이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수선화 때문이다. 강명식(86)·지상악(82) 부부가 40여 년 전에 심은 2알의 수선화 뿌리가 계단밭부터 해안 밭뙈기까지 꽃 천지를 이뤘다. 부부가 애초부터 수선화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농촌소득증대사업이 한창이던 당시 거제군의 지원으로 감귤나무 2,000그루를 심었다. 제주에서는 1그루만 있어도 자식 대학공부 시킨다고 대학나무로 부르던 시절 2,000그루나 심었으니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심은 지 5년이 지나고 첫 수확을 앞둔 1976년 60년 만에 찾아 든 한파에 귤나무는 모두 동사하고 말았다. 그래도 거제에서 가장 따뜻하다는 공곶이에 맞는 작물을 찾는 노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강씨 할아버지는 어느 날 부산에 갔다 돌아오는 버스정류소 부근 종묘상에서 우연히 수선화 구근을 발견했다. 주머니엔 단 2뿌리를 살 수 있는 돈만 있었다. 할아버지는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다’라며 기대에 부풀었지만 채소 심어 반찬이라도 대야 할 할머니 입장에서는 속이 타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도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수선화가 20년이 지나니 꽃집에 내다팔 만큼 개체수가 불었고, 30년 정도되니 농장 전체가 꽃밭으로 변했다. 2000년부터는 매년 일운면에 기증도 하고, 해안가에 핀 아름다운 수선화꽃밭은 거제 8경으로 지정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됐다. 부부의 40년 피땀으로 일궈낸 경관이지만 입장료는 따로 없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이기 때문에 화장실이나 사진 찍기 좋은 전망대 등 편의시설을 맘대로 지을 수 없는 까닭이다. 농장 개방으로 노부부에게 돌아오는 직접적인 이득은 가판에서 화분과 수선화 구근, 채소 등을 판매해 얻는 수익이 전부다.
2월말부터 피기 시작한 수선화는 3월말 절정을 거쳐 지금은 하얀 수선화가 밭 한 켠에만 남아 있다. 굳이 수선화가 아니어도 공곶이마을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노부부가 40년 쌓아 올린 세월의 향기가 계단밭 곳곳에 켜켜이 쌓여있다. 동백 숲과 종려나무, 조팝나무와 각종 들꽃으로 농장 자체가 숲이고 정원이다.
▦봄의 소리 바람 빛깔…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와현에서 14번 국도로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12km를 달리면 ‘학동흑진주몽돌해변’에 닿는다. 파도에 닳고닳아 맨질맨질해진 자갈이 1km 해변에 가득하다. 철이 이르기도 하지만 해수욕보다는 파도와 조약돌이 빚어내는 자연의 화음에 넋 놓고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도르르 파도에 쓸리는 돌 구르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세상사 모난 심사도 어느새 둥글게 깎인다. 포말이 한번 적시고간 검은 조약돌은 봄 햇살에 더욱 반들거린다.
해변에서 수평선 오른쪽은 자라목처럼 길게 튀어나온 육지 끝자락으로 연결돼 있다. 다음 목적지 ‘바람의 언덕’이다. 도장포마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높지 않은 언덕을 오른다. 오목하게 들어간 마을의 포근함은 온데간데 없고, 거짓말처럼 세찬 바닷바람이 온몸을 후려친다. 띠(볏과의 여러해살이 풀)도 살기 어려워 ‘띠밭늘’이라는 옛 지명이 허풍만은 아닌 듯하다. 2009년 설치한 경관용 풍차 뒤로는 동백 숲이 빼곡하다. 한겨울부터 핀다는 동백인데 이곳은 이제 막 절정을 넘긴 듯하다. 바닷바람에 후두둑 떨어진 꽃송이가 어둑한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좁은 목을 중심으로 도장포마을 반대편은 신선대다. 바다와 맞붙어 봉긋하게 솟은 바위산에 소나무 한 그루, 그 옆 너른 바위가 신선들 놀이터겠다. 한편으론 수평선에 비스듬하게 기운 퇴적층의 편린들이 정교하게 짜맞춘 소인국의 문명을 보는 듯하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음…, 파도 그리고 바람” 봄 나들이 온 엄마와 아이의 대화가 신선놀음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신선대로 내려가는 언덕길엔 가꾸다 만 것처럼 성긴 유채가 노란 바람을 자꾸만 푸른 바다로 불어넣는다.
▦거제 땅끝에서 보는 다도해…여차~홍포 해안비경길
신선대에서 다시 8km 가량 내려가면 여차몽돌해변, 바다가 옴폭 들어온 마을을 가파른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아늑하고 한적하다. 이곳에서 이웃마을 홍포까지는 망산을 한 바퀴 도는 1018번 지방도와 연결돼 있는데, 이 구간을 거제시에서 여차~홍포 해안비경길로 이름 붙였다. 거제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망산(375m)은 조선 후기 주민들이 농축산물을 약탈하는 왜구 선박을 감시하고, 고기잡이에 나선 어선을 보호하기 위해 망을 보던 곳이다. 그리 높지 않지만 대·소병대도, 매물도, 장사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날이 좋으면 대마도까지 보인다.
여차~홍포 해안비경길은 등산을 하지 않고도 망산의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망산 반대편으로 14번 국도가 지나기 때문에 이 도로는 지나는 차량이 거의 없다. 일부 시멘트 포장 구간을 빼면 절반 이상이 비포장으로 남아 있다는 점도 여행객들에겐 다행이다. 그래서 느긋하게 드라이브 아닌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전망대는 3곳, 첫 번째 전망대에서는 소박한 여차마을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두 번째 전망대에서는 대병대도와 소병대도가 한층 가까워진다. 홍포마을에 가까운 마지막 전망대에서는 매물도, 소매물도, 가왕도까지 더해 다도해의 섬들이 더욱 많아진다. 무지개 뜨는 갯마을 홍포(虹浦)가는 길은 쪽빛 바다와 초록이 오르는 산 빛이 어우러진 지금이 가장 아름다울 때다.
거제=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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