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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붓글씨엔 추사 코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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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붓글씨엔 추사 코드가 있다

입력
2016.04.2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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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글 ‘신안구가’. '신'의 왼쪽 아래가 木 대신 未로 쓰여 있어 아직은 아니라는 의미다. ‘안’은 여자가 집을 발로 차는 모양새다. ‘구’의 아래에 있는 臼는 아래가 깨져 있다. 대비 권력에 치여 깨어진 집안과 같은 형상이니 새로운 것은 아직 멀었다는 의미라는 해석이다. 들녘 제공
추사의 글 ‘신안구가’. '신'의 왼쪽 아래가 木 대신 未로 쓰여 있어 아직은 아니라는 의미다. ‘안’은 여자가 집을 발로 차는 모양새다. ‘구’의 아래에 있는 臼는 아래가 깨져 있다. 대비 권력에 치여 깨어진 집안과 같은 형상이니 새로운 것은 아직 멀었다는 의미라는 해석이다. 들녘 제공
추사의 글 ‘숭정금실’. 명 마지막 황제 숭정이란 글씨를 보면 숭의 山이 침몰하듯 기울어져있고 정의 貞은 비대해진 몸매다. 금의 아래 今을 자세히 보면 人小로 써뒀다. 소인들이란 의미다. 명은 망했는데 나태한 소인들만 활개친다는 비판이다. 들녘 제공
추사의 글 ‘숭정금실’. 명 마지막 황제 숭정이란 글씨를 보면 숭의 山이 침몰하듯 기울어져있고 정의 貞은 비대해진 몸매다. 금의 아래 今을 자세히 보면 人小로 써뒀다. 소인들이란 의미다. 명은 망했는데 나태한 소인들만 활개친다는 비판이다. 들녘 제공

19세기 조선 연구자들이 아쉬워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는 정조의 손자 효명세자다. 세도정치에 저항해서다. 그러나 수렴청정 3, 4년 정도 하다 왕으로 즉위도 못한 채 죽었다. 다 망한 뒤 되돌아보면 모든 게 아쉬워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안타까운 인물로 꼽힌다.

이 효명세자의 스승이 추사 김정희(1786~1856)다. 추사체라는 걸출한 필법을 남긴 인물로 꼽히지만 그의 정치적 생애가 상처투성인 이유다. 널리 알려진 추사의 제주 유배생활은 효명세자 죽음 뒤 밀어닥친 보복이다.

홍익대에서 석ㆍ박사를 하고 30여년간 동양화가로 활동해온 이성현씨가 바로 이 점에 주목해 ‘추사 코드’(들녘 발행)라는 책을 썼다. 추사가 남긴 글씨를 가만히 보면 못다한 정치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안동 김씨 등 세도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글씨로 교묘히 가렸다는 얘기다. 그게 ‘추사코드’다.

이씨의 해석은 파격적이다. 가령 ‘신안구가(新安舊家)’는 흔히 주자 가문의 고향인 신안의 오래된 집이니 주자학을 신봉하는 유서 깊은 집 정도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씨는 실제 쓴 글씨를 분석한 뒤 “세도가에 지금 도전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자”라고 읽어낸다. 명 마지막 황제의 가야금을 보관해둔 방이라는 ‘숭정금실(崇禎琴室)’ 역시 “망한 명나라 살리겠다면서 제 배만 채우고 있다”는 울분이 담겨 있다고 읽어낸다.

추사코드의 저자인 동양화가 이성현씨.
추사코드의 저자인 동양화가 이성현씨.

-추사를 추적한 계기가 있나.

“난을 그리다 추사를 알게 됐다. 계속 그리다 궁금해졌다. 예술적이라 해도 조선의 유학자는 기본이 정치가다. 글만 잘 썼으면 왜 귀양을 갔겠나. 그럼에도 글씨를 오직 조형성의 관점에서만 보는 게 이상했다. 조형성 문제도 그렇다. 기존 학자들이 문헌만 들여다본다면 나처럼 그림하는 사람은 붓질에 대한 감각이 있다. 쓰다 보면 왜 추사가 이 글자를 꼭 이렇게 썼을까, 의문이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

-해석이 너무 튄다. 최완수, 유홍준 등 기존 해석도 다 반대했다.

“내가 되레 궁금했던 게 그 지점이다. 추사 글씨는 그림이다. 때문에 문맥을 따라 읽지 않으면 이 글자가 이 글자 맞나 싶을 정도로, 때로는 오자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파격적인 글자가 많다. 이 때문에 한자에 밝다는 이도 낱 글자로는 해석하지 못하는 글자가 있고, 지금도 해석할 때 한두 글자 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한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함축적인 문자 체계다. 이걸 단지 추사의 예술성이나 개성으로 해석한다? 난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추사의 정치적 이중화법으로 해석해야 풀린다고 본다.”

-쉬운 글자 뒤에 정치적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얘긴데.

“학문도 깊고 글씨도 좋은 추사의 글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 획만 삐끗해도 바로 죽는다. 그런 상황에서 추사는 읽는 이의 수준을 뛰어넘는 어떤 글쓰기 방법을 구사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청나라 한족 지식인과의 교류에서 왔다고 본다.”

-옹방강 같은 이와의 교류를 말하나.

“그렇다. 한족 지식인들도 청조가 알아볼 수 없는 자기들 나름의 표기법이 있었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 방법을 받았고, 자기 나름의 표현법을 발견해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책은 그런 해석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고 앞으로 3권을 더 내서 추사를 읽는 나만의 독법을 공개해볼 생각이다. 거기엔 추사의 걸작이라는 ‘세한도’도 포함되어 있다.”

-논문을 제출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학계 검증을 받아볼 생각은 안 했나.

“오히려 상식 수준에서 얘기해보고 싶었다. 이 책의 해석은 글과 그림을 오랫동안 만져온 내가 최선을 다한 내 나름의 해석이다. 이걸 넘어서는 더 좋은 해석이 나온다면 나의 해석을 깨끗이 포기할 생각이 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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