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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 시대에 금복주에서 여직원은 ‘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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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 시대에 금복주에서 여직원은 ‘김양’

입력
2016.04.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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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태우고 복사나 하는 단순 업무보조만

한 달 이상 금복주 불매운동ㆍ1인 시위

“금복주 개선책 진정성 부족… 성차별 당연시 사회풍토 바꿀 것”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과 대구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전국 60여 시민사회여성노동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대구 달서구 장동 금복주 본사 앞에서 금복주 참소주 불매운동본부 발대식을 열고 금복주의 성차별관행을 규탄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과 대구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전국 60여 시민사회여성노동단체 회원들이 30일 오전 대구 달서구 장동 금복주 본사 앞에서 금복주 참소주 불매운동본부 발대식을 열고 금복주의 성차별관행을 규탄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향토’기업 금복주에서 1980년대에서나 있을법한 ‘여성’결혼퇴직을 당연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불매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대구여성회 등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지난달 16일 규탄대회에 이어 17일부터 1인 시위에 돌입했다. 노동감독 당국도 금복주에 대한 현장점검에 들어갔다. 피해 여직원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금복주는 여성단체의 ‘실력행사’에 놀랐는지 결국 피해자와 합의했다. 하지만 여성단체의 불매운동과 1인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선술집에선 금복주의 ‘참소주’ 대신 다른 소주를 찾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역 여성ㆍ노동ㆍ시민사회단체가 향토기업의 경영안정을 해칠 수 있는 불매운동과 1인 시위를 계속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남은주(43) 대구여성회 상임대표를 만나 보았다.

불매운동 지속… 금복주 측 개선책 미흡

_지역 여성단체의 노력 덕분인지 피해자의 요구가 다 받아들여졌다. 금복주는 피해자에게 사과했고 적절한 보상과 함께 희망에 따라 퇴직처리 했다고 한다. 불매운동과 1인 시위를 촉발한 원인이 다 해소된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피해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란 확신 때문이다. 금복주 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지 직장내 성차별관행이 만연해 있다. 1987년 성차별금지가 입법화된 이후에도 수십 년간 수많은 여성들이 당해왔던 일이다. 이번에는 그 여성이 용기를 내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을 따름이다. 만약 금복주가 피해자의 요구만 들어주었다면 그대로 묻힌 채 제2, 제3의 피해자가 계속 나왔을 것이다. 또 퇴직을 강요한 간부에 대한 징계, 임원 사퇴 등의 요구에 대해 ‘시정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실제 이행되지 않았다. 1인 시위는 21일로 예정된 금복주와의 실무협의 때문에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협의 이후 재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 부분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냥 결혼퇴직이 아니라 ‘여성’결혼퇴직이다. 남성에겐 없는 일이다. 이는 금복주 등에서 여성을 일의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본업이고 일은 부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번 행동의 궁극적 목표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이다.”

_피해여직원은 왜 복직 대신 퇴직을 선택했나.

“상식적으로 그런 회사에서 복직해서 정상적인 직장생활 할 수 있겠나. 회사 계속 다니라고 하는 것은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동료직원들도 적대시할 가능성이 높은데. 피해 여직원은 회사 그만둘 각오하고 진정하고 고발했던 것이다. 죽을 각오로 나섰던 것이다.”

금복주에서 여직원은 아직도 ‘김양’

_요즘도 일부 민간기업에선 임신ㆍ출산 여직원을 기피하는 경향이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결혼 그 자체만으로 퇴직을 강요한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금복주에선 당연한 일로 여겼다. 60년 가까이 반복됐지만 그 동안 피해자들은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금복주의 여직원들은 왜 결혼퇴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대구서부고용노동지청 관계자에 따르면 금복주 조직 구성원 대부분이 남성이고 각 부서별로 여직원은 1명 꼴로 있다. 유니폼 차림의 여직원은 커피 타고, 음료수 내 놓고, 복사하는 ‘커피카피’가 일이다. 1990년대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무실 내 ‘김양’에 불과했다. 2020년을 바로 보는 시점에서도 여전하다. 첫 실무협의회에서 박홍구 금복주 대표는 여직원 비율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 놀랍게도 “여직원 안 필요해서 안 뽑은 것”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 동안 입사 후 승진 여성이 1명밖에 없었다고 한다. 승진도 기대할 수 없는 이런 조직에서 여직원들은 결혼퇴직을 당연시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금복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서공단 내 다른 기업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관계당국의 무관심이 성차별 양산

_지역 일부 기업의 고용평등 시계가 1990년대에 멈춘 가장 큰 요인은 어디에 있나.

“첫 번째는 관계당국의 무관심이다. 원래는 고용노동청 내 고용평등과에서 남녀고용평등 업무를 맡았는데 이명박 정부 때부터 근로개선2과와 통합되면서 현장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고용평등에 관련한 상담이나 지도점검이 거의 없어졌다. 기업에서 알아서 잘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넌센스다. 회사의 부당한 퇴직압력을 개인이 모두 감수해야 하는 불합리하고 잔인한 구조가 두 번째 이유다. 회사가 평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불평등함을 입증해야 한다. 불평등 고발자로 찍히게 되면 동종업계에선 영원히 퇴출이다. 그 누가 미래를 건 도박에 나서겠나. 이런 잘못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_대구지방고용노동청이 지난 18일부터 여성노동자를 강제 퇴사한 의혹이 있거나 의심 받고 있는 대구ㆍ경북 지역 기업체 46곳을 집중 조사한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직장 내 성차별관행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일이 알려진 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정도일 줄 몰랐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무심했고,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때문이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담당부서인 근로개선2과에는 담당자 1명당 처리해야 할 일이 100~200건씩 밀려 있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 ‘우리가 노동착취를 당한다’고 한탄할 정도더라. 구인광고에 남녀를 특정하면 남녀고용평등법에 어긋나는데, 고용평등과가 있을 때는 자체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시정명령도 내렸다. 지금은 그런 기능 자체가 없다.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에서 몇 주간 자체 조사를 실시해 100여 건을 접수했더니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떡합니까’라고 한숨 쉬더라.”

광역근로감독과 나서야

_대안은.

“우선 고용노동부가 예방과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경찰청 광역수사대처럼 대구 고용노동청에 지난해 광역근로감독과가 생겼다. 이런 부서에서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분위기가 확 바뀔 것이다. 유사업종 특정업체 임직원의 여성 비율이 현저히 낮거나 결혼퇴직자가 지나치게 많은 기업 등에 대해 우편설문조사를 실시한다든지 등의 방법으로 실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_한 사람의 용기가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결혼퇴직 강요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고용노동지청에 고발한 금복주 피해 여직원은 금복주에서 창사이래 처음으로 승진한 여직원이다. 스스로 용기를 내고 행동에 옮긴 대단한 분이고 응원해야 한다. 그렇다고 침묵하는 다수의 피해자들을 답답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처음엔 왜 상담전화가 많지 않고, 어렵게 걸더라도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았는지 이상했지만 지역 기업의 관행을 알고 나니 그럴 수밖에 없더라. 생계가 걸렸는데 부당함에 대해 항의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제 3자의 역할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친구의 억울함은 대신 말해줄 수 있지 않나? 그런 제보를 쉽게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의혹이 쌓이는 기업에 대해 관이 나서서 조사하는 구조가 되야 한다.”

저출산 해결은 양성평등 실현부터

_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이상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으로 인구절벽에 선 대한민국에서 이것은 사회적 문제다.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한 직장 만들기가 고용노동부 캠페인 아닌가. 고용노동부, 지자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현장 분위기를 읽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을 펼쳐야 기업들의 인식이 바뀐다. 일시적인 관심으로 끝내지 말고 제2, 3의 금복주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배유미기자 yu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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