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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아닌 ‘기록’으로 말하겠다는 박태환의 승부수

입력
2016.04.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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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경기 출전을 준비하는 모습. 한국스포츠경제
박태환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해 경기 출전을 준비하는 모습. 한국스포츠경제

기자는 기사로 말합니다. 스트라이커는 골로 증명합니다. 선수는 기록으로 보여줍니다.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박태환(27)이 ‘입’이 아닌 ‘기록’으로 말하겠다며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박태환이 25일부터 광주 남부대국제수영장에서 열리는 동아수영대회에 참가한다고 18일 공식 발표했습니다. 금지약물 복용으로 18개월 출전 정지를 당하고 지난 달 2일 징계가 풀린 뒤 첫 공식 대회 출전입니다.

동아 대회는 리우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하지만 박태환은 이번 대회에서 아무리 좋은 기록을 세워도 올림픽에 나갈 수 없습니다. 대한체육회는 ‘도핑 전력이 있는 선수는 징계 만료 뒤에도 3년 간 국가대표를 할 수 없다’는 현행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개정하지 않겠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규정은 ‘이중 처벌’을 허용하지 않는 국제 추세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체육회도 한때 개정을 검토했지만 ‘선수 한 명 때문에 규정을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불가 방침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기력향상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스포츠공정위원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다루지 않은 채 무리하게 언론에 공표했다는 논란도 나왔습니다.

어쨌든 현 상황에서 박태환은 브라질로 갈 수 없습니다. 올림픽 참가를 위해 징계기간 내내 흘린 구슬땀도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동아 대회는 참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왜 일까요.

호주에서 전훈 중인 박태환은 21일 귀국하는데 이유를 직접 듣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대회 전까지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자신이 올림픽에 나갈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박태환이 다시 한 번 올림픽 무대에서 물살을 가를 수 있을까. 사진은 2012 런던올림픽 당시 출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태환이 다시 한 번 올림픽 무대에서 물살을 가를 수 있을까. 사진은 2012 런던올림픽 당시 출전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태환의 기록에 관심이 쏠립니다.

대회 셋째 날인 27일 열릴 주 종목 자유형 400m가 중요합니다. 전문가들은 박태환이 3분44~45초대 기록을 세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올 시즌 세계 랭킹 1위인 호주의 맥 호튼(3분41초65)에는 못 미치지만 작년 세계선수권 우승자로 올 시즌 2위인 영국의 제임스 가이(3분43초84), 3위인 호주 데이비드 맥컨(3분45초09)과는 겨뤄 볼 만한 기록입니다. 3분44~45초에 터치패드를 찍는다면 박태환은 순식간에 올림픽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급부상합니다. ‘메달권의 톱랭커가 로컬 규정 때문에 올림픽에 갈 수 없다는 게 부당하다’며 여론이 박태환에게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급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태환 측은 내심 이런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반대로 좋은 기록을 못 내면 ‘박태환 구제론’은 자연스럽게 쑥 들어갈 겁니다. 이번 동아 대회가 마지막 승부인 셈입니다.

이도 저도 안 될 경우 마지막 방법도 하나 있는데 바로 소송입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2011년 ‘약물 복용과 관련해 6개월 이상 징계를 받은 선수는 바로 다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IOC는 이 규정을 폐지했습니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도 같은 해 ‘도핑에 적발된 선수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는 영국 올림픽위원회(BOA)의 로컬룰이 규정 위반이라 판단했습니다. BOA는 WADA 결정에 반발해 CAS에 제소했지만 2012년 4월 패소했고, 결국 규정을 없앴습니다. 스포츠 분쟁 전문인 장달영 변호사는 “같은 맥락에서 체육회의 국가대표 선발 규정도 폐지되는 것이 마땅하다”며 “박태환이 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하고도 이 규정 때문에 나갈 수 없다면 국내 법원에 규정 무효 소송을 제기하거나 WADA, IOC에 진정을 내거나 CAS에 중재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박태환이 소송 불사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겠죠.

과연 박태환은 광주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요.

윤태석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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